"유명한 사람 한 명만 우리 옷 입고 찍어주면 끝날 텐데."
옷이든 화장품이든, 직접 파는 입장이면 한 번쯤 해본 생각이잖아요. 크리에이터 협업 견적서를 열었다가 조용히 닫는 그 순간이요.
근데 그 '유명한 사람'이 아예 창업자인 브랜드가 있어요. 미국 여성복 브랜드 페이보릿 도터(Favorite Daughter)예요. 창업자 에린·세라 포스터 자매는 넷플릭스 드라마 '노바디 원츠 디스'를 만든 사람들이고요.
그 자매가 최근 미국 유통 행사 숍톡(Shoptalk) 무대에서 이런 얘기를 꺼냈어요. 세라 말로는 자기네 옷을 A급 셀럽보다 더 잘 파는 사람이 있대요. 팔로워 6만 명인 댈러스의 한 엄마요.
얼굴 하나로 시작한 브랜드가 그 얼굴을 남한테 넘긴 이야기예요. 뭘 넘겼고, 뭘 끝까지 쥐었는지 따라가 볼게요.
"그 드레스는 아무도 안 샀어요"
시작은 운이 좋았어요. 2018년, 자매가 인스타그램에서 쓰던 말들을 옷에 새긴 협업 컬렉션을 냈어요. 그중 '페이보릿 도터', 그러니까 '제일 예쁨받는 딸'이라고 적힌 맨투맨이 대박이 났죠.
같이 낸 '케일' 맨투맨보다 더 팔렸고, 이 협업 상품으로만 200만 달러어치가 나갔어요. 그걸 눈여겨본 의류 회사 센트릭 브랜즈가 청바지 협업을 거쳐 아예 브랜드를 같이 차렸어요. 2020년 12월, 팬데믹 한복판이었고 대표 상품은 마스크 달린 175달러짜리 후드였어요.
자매도 자기들이 쉽게 들어왔다는 걸 알았어요. 2021년 인터뷰에서 둘이 먼저 인정했죠. "저희는 단계를 몇 개 건너뛰었어요. 패션 업계에서 발로 뛰어본 적이 없거든요."
다만 그 지름길엔 조건이 하나 붙어 있었어요. 2022년, 자매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합쳐서 120만 명이었는데 브랜드 공식 계정은 6만 1천 명이었어요. 센트릭의 제니퍼 스텐더 호킨스가 그때 털어놓은 말이에요. "지금 매출 대부분은 에린과 세라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한테서 나와요."
자매를 아는 사람 밖으로 넓히는 게 숙제였던 거죠. 몇 년 뒤엔 그 숙제가 제일 웃픈 모양으로 튀어나왔어요. 자매가 만든 드라마 시즌 2 마지막 회에 자기네 '모건' 드레스를 등장시켰는데요. 세라 말로는 "품절도 안 났고, 아무도 안 샀어요."
대본 쓴 사람이 자기 대본 속 PPL로 쓴맛을 본 거예요. 소품팀 탓을 할 수도 없고요.
반전은 그다음이에요. 세라가 그 드레스를 직접 입고 찍은 짧은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그건 품절이 났어요. 같은 드레스인데 화면만 달랐어요. 드라마 화면보다 폰 앞에서 "이거 입어봤는데요" 하는 사람이 더 잘 팔았던 거죠.
"원래 얼굴로 내세울 생각은 없었어요"
그럼 자매가 매일 영상을 찍으면 될까요? 드라마 만들고 팟캐스트 하는 사람들한테 그건 무리예요. 그래서 이 브랜드가 넘긴 첫 번째 열쇠는 '얼굴'이었어요.
받은 사람은 소셜미디어 책임자 로라 갈번이에요. 하퍼스 바자·엘르·코스모폴리탄을 내는 출판사 허스트에서 쇼핑 기사를 쓰던 에디터였어요.
입사 장면이 좀 영화 같아요. 2021년, 뉴욕에 살던 갈번이 LA에 놀러 갔다가 초밥집 위에 걸린 페이보릿 도터 광고판을 봤대요. 그리고 그 식당 입구에서 에린 포스터와 딱 마주쳤어요.
갈번은 그날 바로 메시지를 보냈고, 몇 주 뒤 자리가 났다는 메일을 받았어요. 그날 일을 두고 갈번이 남긴 말은 짧아요. "너무 재지 말고, 일단 던져보세요."
들어와서는 영상 편집부터 막혔어요. "말 그대로 틱톡에 앉아서 틱톡 편집하는 법을 독학했어요."
지금 갈번은 일주일에 여러 편씩 브랜드 영상에 직접 나와요. "회사에 입고 갈 셔츠 다섯 벌, 100만 퍼센트 값어치 해요" 같은 영상이요. 쇼핑 기사를 쓰던 사람이 이제 쇼핑 기사를 입고 걸어 다니는 셈이죠.
호킨스는 숍톡 무대에서 이걸 계획에 없던 일이라고 했어요. "원래 갈번을 얼굴로 내세울 생각은 정말 없었어요." 그런데 반응이 좋았고, 지금은 직원 크리에이터만큼 중요한 게 별로 없다고까지 해요.
우리 식으로 치면, 스마트스토어 쇼핑라이브를 대표 대신 매일 옷을 만지는 MD가 켜는 거예요. 상품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의 말투가 맨 앞에 서는 거죠.
"작년엔 크리에이터 협업을 공식적으로 한 적이 없어요"
두 번째 열쇠는 1년 중 제일 큰 날에 넘어갔어요. 미국엔 9월 25일 '딸의 날'이 있어요. 이름부터 이 브랜드를 위해 만든 것 같은 날이죠. 이날 페이보릿 도터는 사이트 전 상품을 25% 깎아요.
호킨스 말로는 작년까지 이날은 팬들이 알아서 올려주는 글에 기댔어요. "자발적인 응원은 많았는데, 크리에이터 협업을 공식적으로 한 적은 없었어요."
올해는 순서를 바꿨어요. 8월부터 크리에이터들과 가을 옷 하울 영상을 찍고 새 데님을 밀었어요. 호킨스 표현으로는 "미리 깔때기를 채워두는" 일이었죠. 처음 본 사람이 살 사람이 되기까지 시간을 벌어둔 거예요.
그리고 딸의 날 당일, 크리에이터 25명이 아침 일찍부터 라이브를 켰어요. 대부분 팔로워는 적어도 반응이 좋은 사람들이었대요. 세라가 그 예로 든 사람이 앞에서 말한 팔로워 6만 명의 댈러스 엄마예요.
그날 하루 매출은 2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0억 원대였어요. 작년의 두 배예요. 2018년 협업 상품 전체로 번 돈을 이번엔 하루 만에 판 셈이죠.
회사는 '일부는' 크리에이터 덕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다만 작년과 달라진 점으로 직접 꼽은 게 8월부터의 준비와 그 25명이었어요.
참고로 이 브랜드 드레스는 대부분 300~350달러예요. 25%를 깎아도 한 벌에 30만 원 안팎인 옷으로 채운 숫자예요.
"진짜 팬이 아니면 안 해요"
같은 무대에 선 미국 가구 체인 밥스 디스카운트 퍼니처의 마케팅 책임자 스티븐 네슬은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어요. "브랜드 열쇠를 크리에이터에게 넘기는 게 정말 겁났어요." 큰 회사 마케팅 책임자한테도 무서운 일이에요.
페이보릿 도터가 넘긴 걸 정리하면 이래요. 얼굴은 직원에게, 제일 큰 날 아침의 라이브는 크리에이터 25명에게 넘겼어요. 대신 날짜와 할인율, 8월부터 판을 까는 순서는 브랜드가 정했어요.
그리고 끝까지 안 놓은 게 하나 더 있어요. 누구에게 넘기느냐요. 세라는 앞으로도 결이 맞고 진짜 팬인 사람하고만 하겠다며 이유를 한 줄로 댔어요. "소비자는 가짜 냄새를 이미 맡았고, 이제 그걸 원하지 않아요."
이 사례는 작은 브랜드한테 오히려 반가운 얘기예요. 자매가 가진 100만 넘는 팔로워도, 넷플릭스 드라마도 우리한텐 없죠. 이번 딸의 날 숫자 옆에 선 얼굴들은 그보다 훨씬 수수했어요. 매일 옷을 입어 보이는 직원 한 명, 그리고 팔로워 6만의 엄마요.
손님은 폰 앞에서 직접 입고 설명하는 사람한테 지갑을 열어요. 드라마 속 드레스는 안 팔리고 세라의 폰 영상 속 드레스는 팔린 게 딱 그 얘기예요. 그 '폰 앞의 사람'이 꼭 유명할 필요는 없다는 걸 딸의 날 숫자가 보여줬고요. 큰 이름을 모셔 올 협찬비가 모이기 전에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 상품 후기에 사진을 제일 열심히 올려준 손님, 매일 상품을 만지는 직원 한 명. 첫 열쇠는 거기서부터 넘겨보세요. 진짜 좋아하는 사람인지, 그 기준 하나만 꼭 쥐고요!
민지, 셔츠 다섯 벌 펼쳐놓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