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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달러 신상 향수, 향은 새로 안 만들었어요

한이룸 · 2026.10.08 · 읽는 시간 6분

52달러짜리 초가 125달러짜리 향수가 됐어요. 새 향을 만든 건 아니에요.

미국 향초 브랜드 네스트 뉴욕(NEST New York)이 향수 확장에 나서면서 고른 건 '홀리데이'예요. 1년에 넉 달만 매장에 나오는 연말 한정 캔들이죠. 그 향을 다듬어 '원더(Wonder)'라는 이름의 오 드 퍼퓸으로 담았어요.

석류, 만다린, 소나무, 정향, 시나몬. 이 향이 집에 퍼지면 "아, 연말이구나" 하는 미국 집이 꽤 많다고 해요. 회사 설명으로는 연말 시즌 매출이 1년 매출의 절반을 넘긴대요.

손님이 해마다 다시 사 간 향을 더 비싼 그릇으로 옮긴 거예요. 이게 왜 자연스러운 수순인지는, 이 향을 키운 창업자 로라 슬랫킨(Laura Slatkin)이 걸어온 길을 보면 보여요.

"로라, 그렇게 앉아만 있을 거면 집에 가자"

로라는 원래 월가 사람이었어요. 리먼 브라더스에서 13년 동안 자산가들 주식을 굴렸죠. 1990년대 초, 남편 해리와 함께 회사를 나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시아주버니의 맨해튼 가게로 들어갔어요. 그는 집 한 채를 다 꾸미면 마무리로 그 집만의 향을 만들어 주던 사람이었거든요.

그 아이디어로 차린 게 향초 회사 슬랫킨앤코예요. 집에서 향초를 켠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던 때라 처음 10년은 쉽지 않았대요. "회사를 차리는 동시에 산업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러다 2005년, 배스앤바디웍스를 거느린 리미티드 브랜즈에 회사를 팔았어요.

해피엔딩 같죠? 근데 그다음이 고비였어요. 경쟁 금지 조항 때문에 3년 동안 자기 브랜드를 못 냈거든요. 할 수 있는 건 남의 브랜드 캔들을 대신 만들어 주는 일뿐이었어요. 랄프 로렌, 나스, 토리 버치까지 100곳 넘는 브랜드의 향초를 만들었대요.

그중 제일 큰 건이 하나 있었어요. 아주 큰 대중 브랜드의 홈 향 라인이었죠. 향을 다 만들고, 패키지를 다 디자인하고, 로라가 직접 전국 유통사를 돌며 입점까지 받아놨어요. 그해 농사가 전부 그 하나에 걸려 있었고요.

어느 날 저녁, 로라는 남편과 저녁을 먹으러 매디슨 애비뉴로 가던 길이었어요. 휴대폰에 음성 메시지가 와 있었죠. 그 회사 CEO였어요. 계약은 없던 일로 하자는 내용이었어요.

"심장에 칼이 꽂히는 것 같았어요. 숨이 안 쉬어졌죠." 식당에 앉아서도 향료 회사엔, 협력업체엔, 직원들한텐 뭐라고 하나 그 생각뿐이었대요. 땀만 흘리는 로라에게 해리가 한마디 했어요. "로라, 그렇게 앉아만 있을 거면 집에 가자." 데이트하는 날이었는데 말이에요.

"그 향을 좋아한 사람은 저 하나였어요"

아무리 애써도 계약은 살아나지 않았어요. 로라는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렀죠. 소식을 듣자 다들 헉 소리를 냈대요. 로라는 그 자리에서 판을 뒤집었어요. "그 향들, 그 패키지, 그 유통 관계 전부 가져가요. 거기에 우리 이름을 붙일 거예요. 준비하세요."

1년 뒤인 2008년 말, 네스트 캔들 12종이 나왔어요. 금융위기로 다들 외식을 끊던 때였죠. 로라 말로는 사람들이 집에서 미트볼 스파게티를 해 먹고, 친구를 불러 초를 켰대요. 출시 첫날 캔들이 수천 개 팔렸어요.

남의 캔들을 100개 넘게 만들어 본 3년이 헛되진 않았어요. 그 브랜드들 캔들이 잘 팔리긴 하는데 크게 터지진 않는 걸 보면서, 로라는 손님들이 하는 말을 들었거든요. "패션 디자이너 캔들, 구두 디자이너 캔들은 싫어요. 향초 하는 회사 캔들을 살래요."

그렇다고 로라의 감이 늘 맞았던 건 아니에요. 버번을 넣은 슈거쿠키 향을 낸 적이 있는데, 본인은 "우리가 낸 향 중 최고"라고 했어요. 결과는요? "문제는 그 향을 좋아한 사람이 저 하나였다는 거예요." 주변에 일단 켜보면 다들 살 거라고 했는데, 일주일 뒤 전화해 보니 아무도 안 샀대요.

반대로 로라를 길에서 붙잡는 향도 있었죠. "당신네 홀리데이 캔들이 없으면 연말이 연말 같지가 않아요." 이 말을 정말 자주 듣는대요. 재밌는 건 2009년 초 향초 블로그 캔들 딜리리엄(Candle Delirium)이 소개한 첫 컬렉션 12종 목록에도 홀리데이 이름은 안 보인다는 거예요. 첫 라인업 밖에 있던 향이 손님들 손에서 간판이 된 셈이죠.

지금은 그 향이 거리까지 채워요. 연말이면 뉴욕 5번가에 늘어선 트리 장식 디퓨저에서 홀리데이 향이 나와요. 백악관 연말 행사에 홀리데이 캔들 350개가 켜졌다고 로라가 자랑한 적도 있죠.

"집 냄새를 그대로 입고 다니긴 좀 그렇잖아요"

로라는 2025년 여름 일상 경영에서 물러나 이사회에 남았어요. 원더를 만든 건 그 뒤를 맡은 팀이에요. 창업자의 촉보다는 손님들이 해마다 다시 사 간 기록을 믿고 내린 결정에 가까워요.

크리에이티브·브랜드 총괄 토니 라키스(Toni Lakis)의 설명은 간단해요. "손님들이 해마다 이 연말 향을 찾아서 오세요. 그래서 이 향을 여러 방식으로 살릴 방법을 찾아왔죠." 새 카테고리에서 이름부터 알리는 대신, 이미 아는 향으로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캔들 향을 그대로 병에 붓진 않았어요. "당연히 집 냄새를 그대로 입고 싶진 않잖아요. 그래도 홀리데이의 핵심은 살렸어요." 거실 냄새를 풍기며 출근하면 동료들이 이사했냐고 물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파출리를 더해 조금 더 어둡고 매콤하게, 남녀 구분 없는 향으로 바꿨대요.

가격표도 달라졌어요. 클래식 캔들이 52달러인데, 원더는 100ml에 125달러예요. 8ml 여행용은 32달러고요.

가볍게 고른 카드는 아니에요. 네스트는 아직 홈 향이 매출의 60%를 넘는 회사예요. 향수 비중은 3년 전 10%도 안 되던 게 35% 가까이 올라왔고요. 올해 신제품 넷 중 셋이 향수예요. 라키스도 "홈 사업은 브랜드에 너무 중요해서 지켜야 한다"고 못 박았어요. 연말을 책임지는 간판 향에 손을 대는 거니까요.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어요. 2021년 처음 낸 퍼퓸 오일은 향수 매출을 3년 안에 두 배로 키우는 게 목표였는데, 9개월 만에 해냈다고 해요. 향수는 세포라·얼타에서 팔리면서 더 젊은 손님을 데려오고 있고요. 백화점 캔들 매대의 손님과 화장품 매장의 손님을, 다들 아는 냄새 하나로 잇겠다는 계산이죠.

마케팅 책임자 에르완 르 베리고의 말이 이 계산을 그대로 보여줘요. "결국 손님을 홈 향 매대에서 향수 매대로 데려오는 거예요." 5번가 거리 향 팝업도 올해로 네 번째 열린대요.

"작년 12월에 팔린 그 옵션, 올해도 팔렸나요?"

한국 셀러로 치면 이런 장면이에요. 스마트스토어에 겨울 니트가 다섯 가지 색으로 있는데, 해마다 11월이면 오트밀 색만 먼저 품절돼요. 우리는 보통 "올해도 잘 나갔네" 하고 넘기죠.

네스트를 따라가 보면 그 오트밀 색 하나가 이미 검증이 끝난 신제품 기획서예요. 손님이 해마다 같은 걸 다시 고른다는 건, 다음 상품을 설명할 말이 이미 손님 입에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 색이요"라고 하면 다 알아듣는 거죠.

이게 통하는 데는 조건이 있어요. 하나, 같은 시기에 같은 손님이 다시 사야 해요. 한 번 반짝한 히트랑은 달라요. 둘, 그릇을 바꾸면 쓰임새에 맞게 손봐야 해요. 니트 색을 머플러로 옮긴다면 두께와 촉감은 머플러답게 바꿔야 하는 것처럼요. 셋, 원래 상품은 그대로 둬요. 원더가 나와도 홀리데이 캔들은 매대에 그대로 있어요.

신제품 대신 이미 팔던 오일을 깡통에 담아 냈던 인도 세 모녀 이야기도 같은 줄기예요. 새로 만드는 것보다 손님이 이미 고른 걸 다시 꺼내는 쪽이 덜 무섭고 더 빨라요.

로라의 버번 쿠키도 같은 얘기를 해요. 만든 사람이 제일 아끼는 향과 손님이 다시 사 가는 향은 다를 수 있어요. 네스트의 숫자는 후자 편이었죠.

시즌 상품을 짜기 전에 작년 11~12월 주문 내역을 열고, 재작년 같은 달에도 팔렸던 옵션에 형광펜을 그어보세요. 두 해 연속 손님이 다시 고른 그 이름에서 이번 연말 신상품을 시작해보세요!

시향지 냄새 맡다 재채기 세 번 한, 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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