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동복 브랜드 한나 앤더슨이 자기 이름으로 아마존 입점을 했어요. 그런데 아마존 가게에 건 옷의 90%는 자사몰에 없는 옷이에요.
간판 상품은 대부분 자사몰에 남았어요. 새로 나온 가족 커플 잠옷 무늬 60여 종과 드레스는 자사몰 몫이거든요.
쿠팡과 스마트스토어에 같은 상품을 같은 값에 올려두고, 한쪽에서 할인할 때마다 다른 쪽 단골 눈치를 보는 입장이면 이 목록이 좀 부러울 거예요. 이 회사, 40년 전엔 우편함에서 시작했어요.
차고, 전화기 한 대, 7만 5천 부의 카탈로그
1980년 뉴욕. 스웨덴 출신 건 덴하트가 둘째 아들을 낳고 아기 옷을 찾아다녔어요. 고향에서 입히던 부드럽고 튼튼한 면 옷이 어디에도 없었거든요.
건은 어학원 체인의 재무 매니저, 남편 톰은 광고회사 오길비 앤 매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어요. 둘은 스웨덴에서 몇백 달러어치 옷을 사 와 친구들에게 나눠줬어요.
톰의 회고는 짧죠. "다들 옷을 좋아했어요. 그게 우리 시장조사였죠." 설문지 대신 선물 돌리기였던 거예요.
1983년, 부부는 코네티컷 집을 판 돈 25만 달러를 전부 걸고 톰의 고향 포틀랜드로 갔어요. 사무실은 집 차고였죠. 전화기 한 대, 손님 주소를 적은 카드 상자, 집 안 곳곳에 쌓인 재고가 전부였고요.
첫 카탈로그는 14일 만에 만들었어요. 모델은 스웨덴 친정집에서 찍은 친구네 아이들이었죠. 사방 2.5센티미터짜리 원단 견본은 부부가 한 장씩 손으로 오려 붙였고요.
육아 잡지에 카탈로그를 1달러에 보내준다는 광고도 냈어요. 제목은 "스웨덴 아기들은 왜 그렇게 행복할까?" 좀 뻔뻔한 질문인데, 첫 카탈로그는 7만 5천 곳으로 나갔어요.
회사 이름은 건의 할머니 이름이에요. 아이를 좋아했고, 낭비를 죄처럼 여긴 분이었대요. 덴하트 부부의 상품 기준도 할머니를 쏙 닮았죠. "빨기 어려우면, 아무리 귀여워도 절대 안 들여요."
80년대 내내 매출은 해마다 두 배씩 늘었어요. 1985년엔 작아진 옷을 돌려보내면 다음 구매를 20% 깎아주는 '한나다운' 제도도 만들었고요.
1992년의 새 카탈로그
회사가 커지자 탈도 났는데요. 주문한 옷이 한참 뒤에 오는 백오더(재고 부족으로 밀린 주문)가 손님 불만 단골이었어요.
그 무렵 톰은 배를 고치겠다며 안식년을 떠났거든요. 카탈로그는 새 디렉터가 맡았고, 1992년 그가 자기 색을 입힌 새 카탈로그가 나갔어요.
결과는 매출 급락이었어요. 새 디자인을 접고 예전 모양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매출이 돌아왔어요. 미용실 다녀온 친구를 손님들이 길에서 못 알아보고 지나친 셈이죠.
80년대엔 해마다 두 배씩 크던 회사가 1993년엔 8% 성장에 그쳤어요. 직원의 10%, 스무 명을 내보냈고요. 나중에 대부분 다시 불러들이긴 했지만요.
건은 1994년 경제지 인터뷰에서 그 시절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는데요. "우리가 너무 안만 들여다보다가, 회사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놓쳤어요."
이 문장, 잠깐 기억해두세요. 30여 년 뒤 아마존 목록을 짤 때 거꾸로 다시 나오거든요.
매장 50곳을 닫은 다음
부부는 2001년 회사를 1억 7,500만 달러에 팔았어요. 주인이 몇 번 바뀌는 동안 매장도 늘었죠.
그리고 2020년, 한나 앤더슨은 50곳 넘는 매장을 모두 닫고 온라인으로만 팔기로 했어요. 옷감 만져보고 사던 손님을 한꺼번에 화면 앞으로 보낸 거예요.
매장 매니저들은 온라인 퍼스널 쇼퍼가 됐어요. 채팅·전화·문자로 옷을 골라주는 사람이요. 2022년 여름에 온 CEO 에메 라픽은 결과를 숫자 대신 사람으로 자랑해요. "우리 퍼스널 쇼퍼 몇 명은 혼자서 웬만한 매장 하나보다 더 팔았어요."
2023년엔 중고 거래 사이트 '한나-미-다운'을 열었어요. 할머니의 '낭비는 죄', 1985년의 한나다운이 새 옷을 입고 돌아온 거죠. 지금까지 16만 벌 넘게 손님 2만 5천 명에게 다시 팔렸어요.
라픽의 계산은 이랬어요. "우리 옷이 스레드업이랑 포시마크에서 인기가 많았어요. 그 손님들을 우리 안에 붙잡을 기회라고 봤죠."
충성 고객 프로그램 회원도 100만 명이 모였어요. 근데 빈칸이 하나 남았어요. 내일 당장 필요한 옷이요.
아마존 입점용 목록 한 장
미국 학교엔 '스쿨 스피릿 위크'라는 게 있는데요. 요일마다 정해진 옷을 입고 가는 주간이에요. 우리로 치면 내일 체육대회 반티를 오늘 밤에 알게 된 날이죠.
라픽은 이 장면을 콕 집었어요. "엄마가 지금 당장 뭔가 필요할 때 닿는 거예요. 아마존에 없어서 우린 그걸 놓치고 있었어요."
그래서 팀은 옛 디자인 자료실부터 뒤졌어요. 잘 팔렸던 무늬, 원단, 옷 모양을 골라 아마존용 목록을 따로 짰어요.
아마존으로 가는 건 놀이옷, 잠옷, 속옷, 위아래 세트, 선물 세트예요. 아기 선물 목록(베이비 레지스트리)용으로는 네 방향으로 늘어나는 '한나소프트' 잠옷을 밀고요. 홀리데이 옷과 가족 잠옷은 조금만 넣었죠.
자사몰엔 피너츠·그린치 무늬까지 60종 넘는 새 가족 잠옷과 드레스가 그대로 남아요.
사실 아마존엔 몇 해 전부터 아마존 패션과 함께 만든 '문 앤 백' 라인이 있었어요. 다른 이름을 단 옷이었죠. 한나 앤더슨이라는 이름을 걸고 가게를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번엔 목록을 짜기 전에 밖에 먼저 물었어요. 라픽 말로는 "아마존, 그리고 업계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배운 건, 사람들이 온갖 아동복과 아기옷을 사러 아마존에 온다는 거였어요."
1992년에 안만 들여다봤던 회사가, 이번엔 그 채널 손님이 뭘 사러 오는지부터 확인한 거예요.
같은 옷이 없는 두 매대
두 매대에 같은 옷이 없으면 손님이 두 가격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일이 없어요. 아마존에서 할인해도 자사몰 단골이 흔들릴 이유가 없죠.
라픽은 아마존을 "새로 붙는 성장"이라고 불러요. 아마존에서 처음 한나를 만난 엄마가 다음엔 자사몰로 오길 바라고요. "두 채널이 나란히 잘 굴러갈 거라고 봐요."
아직 첫 성적표는 나오기 전이에요. 다만 목록을 가른 기준은 분명해요. 아마존엔 '지금 당장'을, 자사몰엔 '고르는 재미'를.
지난 #85의 주노코가 본품과 리필로 채널을 갈랐다면, 한나는 손님이 얼마나 급한지로 갈랐어요. 이 기준은 다른 가게로 옮겨 쓰기도 쉬워요. 내일 소풍 간식이나 오늘 밤 생일 초를 찾는 손님처럼, '지금 당장'이 급한 손님은 과자 가게에도 소품 가게에도 있거든요.
같은 상품을 쿠팡과 스마트스토어에 같이 걸면, 손님은 상품명을 검색해서 싼 쪽으로 가요. 한쪽 할인은 곧 다른 쪽 가격 문의가 되고요. 내 가격이 내 가격이랑 싸우는 셈이에요.
그러니 내 쿠팡 목록과 스마트스토어 목록을 나란히 뽑아서 겹치는 줄이 몇 줄인지부터 세어보세요. 작년에 잘 팔렸던 색이나 무늬를 꺼내 쿠팡 전용 세트로 묶는 것도, 한나가 자료실에서 한 일 그대로예요.
겹치는 줄이 줄어드는 만큼 할인 눈치도 줄어요. 오늘 밤 목록 두 장부터 뽑아보세요!
스웨덴 아기 잠옷 사이즈표를 괜히 열어본 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