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상품을 올리는데 카테고리 선택 창에서 손이 멈춘 적 있으시죠.
내 물건은 분명 하나인데 화장품도 아니고 건강식품도 아니고 잡화도 아니에요. 결국 대충 하나 고르고 넘어가죠.
근데 그 선택 하나가 매출을 절반으로 깎기도 해요.
미국에서 캔 음료 하나 파는 1년차 브랜드가 딱 그 문제로 1년을 싸웠어요. 이거 보세요. 결론이 좀 싱거운데 써먹을 데가 많아요.
한 달에 2주씩 사라지던 사람
아나스타샤 사르탄은 원래 테크 쪽 사람이었어요. 패션 검색 앱 스타일핵스를 만들어 스냅에 팔았고, 그 뒤 스냅에서 프로덕트 디렉터로 일했죠.
이력만 보면 탄탄한데, 정작 본인은 한 달에 2주씩 일이 안 됐어요. 심한 월경전 증후군(PMDD)이었거든요.
"기분도 에너지도 집중력도 무너져서 일도 관계도 일상도 불가능해지는 2주"라고 본인이 적어놨어요. 회의실에서 유일한 여성인 날이 많았으니 그 얘기를 꺼내기도 어려웠고요.
그래서 동유럽에서 자랄 때 먹던 씨벅손(비타민나무 열매)을 떠올렸어요. 허브 전문가들과 함께 주방에서 우려내기 시작했죠.
배합을 잡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씨벅손 주스에 쐐기풀, 레몬밤, 마카, 세이지 같은 허브를 차갑게 우려 넣었고요.
한 가지 맛으로 끝내지도 않았어요. 생리 전, 생리 중, 갱년기 앞뒤로 몸 상태가 다르니까 단계별로 나눠서 만들었죠.
2025년 9월, 첫 캔이 나왔어요. 250밀리리터가 채 안 되는 슬림캔에 카페인도 첨가당도 없고, 한 캔에 4.5달러쯤 해요. 투자는 안 받았어요. 자기 돈으로 했죠.
이름을 짓는 방식도 좀 셌어요. '그날'이니 '컨디션'이니 하는 완곡어를 안 쓰고, 캔에 생리와 갱년기를 그대로 적었거든요. 손님이 집었을 때 무슨 물건인지 3초 안에 알게 하려고요.
문제는 맛이 아니라 '어느 골목에 놓이냐'였어요
반응은 나쁘지 않았어요. 1년 만에 미국 600곳 넘는 매장에 들어갔고, 업계 상도 세 개 받았다고 브랜드가 밝혔어요.
근데 정작 매장에서 문제가 터졌어요. 캔이 꽂히는 자리가 매장마다 다 달랐거든요. 어떤 곳은 음료 냉장고, 어떤 곳은 웰니스 냉장고, 또 어떤 곳은 비타민 코너.
"여성 건강 음료를 만든다고 말하면 대부분 제일 빨리 알아들어요. 그런데 그게 매장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지는 아직 답을 찾는 중이에요." 사르탄의 말이에요.
세상에 생리를 하는 사람이 18억 명인데, 이 카테고리 물건들은 그동안 대부분 영양제 매대에만 살았어요. 음료로 만들어놓고 보니 꽂을 칸이 없었던 거예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비타민 코너는 손님 열 명 중 한 명만 들어오는 골목이거든요. 물건은 그대로인데 손님 아홉 명이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반대로 다른 음료들 옆에 놓이면 "회전율이 확 뜁니다"라고 했어요. 여성만 보고 만든 물건인데, 모두를 상대하는 기능성 음료들과 비슷한 속도로 팔린다는 거죠.
거기다 구매자의 10%쯤은 남성이에요. 아내나 딸에게 주려고 사가는 사람들이요.
바이어를 설득하는 일도 비슷했어요. "남성 바이어는 처음엔 설득이 어려워요. 그 문제에 감정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으니까요." 반대로 "여성 바이어는 대체로 바로 알아들어요"라고 했고요.
물론 예외도 있었어요. 한 자연식품 체인의 남성 바이어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다시 전화를 걸어왔대요. 자기네 손님들한테 이게 필요하다고요.
그때 90일짜리 시험 매대가 열려 있었어요
여기서 스프라우츠 파머스 마켓이 등장해요.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490곳쯤 되는 유기농 식료품 체인인데, 우리로 치면 전국에 깔린 중형 마트 하나예요.
이 회사엔 남다른 구석이 하나 있어요. 남들이 안 파는 물건을 찾아오는 게 전략 그 자체거든요.
'포리저'라고 부르는 발굴 팀이 세계 전시회를 돌아다녀요. 부스도 못 낸 채 배낭 메고 다니는 창업자들을 일부러 찾아다닌 적도 있고요.
최고경영자 잭 싱클레어는 이렇게 말했어요. "포리징 팀은 아무도 안 팔고 있는 걸 찾으러 나갑니다."
그렇게 2024년 한 해에만 신상품 7,100개 이상을 들였어요. 그 물건들이 처음 놓이는 자리가 신인 전용 매대인 '이노베이션 세트'예요.
규칙이 재밌어요. 90일 동안 놓고 성적을 봐요. 그중 약 40%만 정규 매대로 올라가요.
그리고 그 성적표엔 브랜드 인지도 칸이 없어요. 그 매대 안에서 얼마나 빨리 팔렸는지, 회전율만 봐요.
무대에 올랐더니 바이어가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었어요
사르탄은 콜드메일 대신 무대를 골랐어요.
4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음료 업계 행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음료 브랜드'로 뽑혔거든요. 심사위원이 누구였냐면, 스프라우츠와 대형 도매상 케이헤, 온라인몰 스라이브마켓의 바이어와 임원들이었어요.
수상이 곧 바이어 미팅이었던 셈이죠.
그 달 말 스프라우츠 신인 매대에 들어갔고, 5월엔 케이헤를 통해 전국으로 물건이 나갔어요.
결과는요? 그 신인 매대 안에서 매출 회전율 1위를 찍었어요. 그리고 이번 9월부터 스프라우츠 전 점포 정규 매대로 올라갑니다.
손님 열에 아홉이 그냥 지나치는 비타민 골목에서 받아온 성적표예요. 😅
지금 우리 앞에도 같은 종류의 문이 있어요
경주에서 열린 한 상담회에 유통사 스무 곳 남짓이 앉았어요. 쿠팡·11번가·G마켓·롯데온부터 알리익스프레스·쇼피·테무까지, 상품기획자 30명이 지역 기업 100여 곳과 1대 1로 만났고요.
이런 자리는 우리가 유명해져서 열리는 게 아니에요. 저쪽도 새 물건과 거래액이 급해서 여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조건이 후해요. 그리고 실적이 채워지면 조용히 닫히고요.
이 대목만 훔치자
첫째, 심사표가 '인지도'가 아니라 '짧은 기간의 회전율'일 때가 작은 브랜드한테 제일 유리한 구간이에요. 90일 시험 매대든 한 달짜리 기획전이든, 그 안에서 숫자만 내면 다음 라운드의 대접이 달라져요.
둘째, 그 숫자는 제품력만으로는 안 나와요. 내 물건이 어느 매대에, 어떤 물건들 옆에 놓여야 팔리는지를 파는 사람이 먼저 알고 있어야 해요.
사르탄은 매장마다 위치를 바꿔가며 팔린 속도를 기록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4캔 묶음은 생리대 옆에 있는 게 맞다"까지 말할 수 있게 됐죠. 스마트스토어로 치면, 내 상품이 어떤 검색어와 어떤 기획전 옆에 붙어야 클릭이 붙는지를 내가 먼저 정해서 제안하는 거예요.
셋째, 아무도 내 카테고리를 모른다는 건 나쁜 신호가 아니에요. 홀푸드 바이어 출신 투자자 엘리 트루스델은 이렇게 말했어요. "머천트가 어디에 둘지 모른다는 건 뭔가 다른 걸 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건 아마 좋은 신호예요."
지금 열려 있는 상담회 하나, 기획전 하나만 잡아서 90일치 숫자를 만들어보세요. 그 숫자가 다음 문을 열어줍니다.
박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