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노트북 켜고 '해외 판로'라고 적어둔 폴더 한번 열어보셨죠. 쇼피 입점 안내, 아마존 셀러 가이드, 코트라 설명회 공지. 근데 스크롤 내리다 보면 꼭 같은 자리에서 멈춰요.
재고를 얼마나 보내야 하지, 통관은 누가 하지, 환불 오면 그 물건은 어디로 가지. 그래서 폴더 이름이 3년째 '언젠가'입니다.
서울 화곡동에 직원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3만원짜리 안경을 파는 브랜드가 하나 있는데요. 이 회사는 그 '언젠가'를 중국 1위 쇼핑몰이 대신 풀어줬어요. 재고째로 사갔거든요. 이거 보세요, 순서가 좀 재밌습니다.
안경을 고른 이유가 '재고 부담이 없어서'였어요
리끌로우 김성준 대표는 대기업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월급 꼬박꼬박, 복지 든든. 근데 정해진 일만 하는 미래가 지겨웠대요. 입사 전에 1년쯤 장사해본 경험이 있어서 자신은 있었는데, 문제는 아이템이 안 떠올랐다는 거죠.
그러다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을 봤어요. 안경, 선글라스. 작고 가볍고, 사이즈도 없고, 유통기한도 없잖아요. 첫 시작으로 재고랑 돈 부담이 없겠다 싶어서 안경을 골랐습니다. 2015년 이야기예요.
초반은 뻔했어요.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자체 쇼핑몰에 2만원대 안경이랑 시즌 선글라스 4만~6만원짜리를 올렸죠. 그때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신생브랜드이기 때문에 광고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요. "그러나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매출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직원이 적어서 힘들다고, 그래도 내 브랜드 키우는 기쁨으로 버틴다고요. 광고비 폭탄 맞아본 입장이면 이 문장이 얼마나 쓴지 아실 거예요.
안경원 대신 마트 매대에 올렸어요
여기서 리끌로우가 다른 안경 브랜드랑 갈라집니다. 안경원에 넣으려고 안 했어요. 옷이랑 과자 파는 데 갖다 놨죠.
2017년 편집숍 바인드에 납품을 시작했고, 2018년엔 홈플러스랑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팝업을 냈어요. 카트 끌고 가다가 3만원짜리 선글라스 집어 드는 그림이잖아요. 안경을 라면 옆에서 파는 브랜드가 된 거예요.
온라인은 무신사였는데요. 2018년 무신사 아이웨어 부문 1위에 올랐고, 사각 뿔테 'BO19 블랙'은 1년에 2만 4천 개가 팔렸어요. 선글라스는 2만 8천~4만 2천원. 젠틀몬스터 하나 살 돈이면 리끌로우가 열 개죠.
2019년에서 2021년 사이 온라인 매출은 500%, 오프라인은 700% 올랐습니다. 2021년 12월엔 연매출 20억을 넘겼어요. 자본금 5천만원에 지분 100%가 대표 한 사람인 회사가요.
근데 매장 찾기가 너무 어려웠대요
잘나가는 것 같죠. 근데 한 손님이 스레드에 올린 글이 있어요. 비 오는 날 서울 리끌로우 매장을 돌았대요. 명동 롯데 영플라자는 리모델링으로 문 닫았고, 동대문 편집숍엔 "매장 한 귀퉁이에 언제 가져다 놓은지 모를 먼지 쌓인 선글라스 몇 개"뿐이었다고요. 결국 화가 나서 청량리까지 갔답니다.
"리끌로우, 매장 관리 좀…" 이 글이 2025년 봄이에요. 온라인은 1위인데 오프라인은 남의 매장 귀퉁이. 매출은 2023년 67억에서 2024년 94억으로 40%나 뛰었는데, 손님이 물건을 만져볼 데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자기 매장을 냈어요. 명동에 첫 플래그십, 2025년 12월엔 홍대에 58평짜리 '홍대 하우스'. 시그니처 핑크로 도배하고 안경 옆에 머플러, 장갑, 레인부츠까지 깔았고요.
명동 손님이 도쿄 돈키호테 문을 열었어요
그다음이 좀 뜻밖입니다. 명동·홍대 매장에 들른 일본 관광객들이 브랜드를 일본으로 실어 날랐어요.
무신사재팬이랑 조조타운에서 조용히 팔리던 브랜드였는데요. 서울에서 직접 써보고 산 일본 손님들의 구매 경험이 현지 인지도를 만들어줬대요. 그걸 발판으로 돈키호테에 들어갔죠. 올 초 신주쿠·이케부쿠로 등 도쿄 8개 점에 동시 입점, 지금은 일본 49개 점포에 깔려 있어요.
주력은 접이식 선글라스예요. 돈키호테 손님이 뭘 사겠어요, 캐리어에 들어가는 거죠. 관계자 말이 담백합니다. "현지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가 지점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요. 잘 팔리는 매대부터 하나씩. 인도네시아도 같은 식으로 발리 비치워크, 자카르타 리포몰에 매장 셋을 냈어요.
그리고 중국 1위 쇼핑몰이 재고째 사갔어요
이 흐름 위에 징둥이 얹혔어요. 중국 민영기업 매출 1위, 우리로 치면 쿠팡 같은 직매입 플랫폼이죠. 징둥은 올해 한국에 구매 전문 법인을 세우고 코트라 본사에서 설명회를 열었는데요. 200개 회사가 왔고, 54개사가 1대1 상담을 받았고, 9개사가 현장에서 150만 달러짜리 직매입 계약을 했습니다.
그 9개사 명단이 이래요. 이랜드(로이드), 코오롱,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 그리고 리끌로우. 대기업 틈에 직원 열 명이 안 되는 회사가 하나 끼어 있어요.
직매입이 뭐냐면요. 징둥이 물건을 사서 자기 창고에 넣고 자기 이름으로 팔아요. 리끌로우는 징둥닷컴 안에 징둥이 직접 운영하는 '자영 플래그십 스토어'까지 열었고요. 재고도, 통관도, 대금 회수도 징둥 몫이에요.
'재고째'가 말로만 들으면 좀 추상적이잖아요. 실제로는 리끌로우가 만든 안경이 상자에 담겨 중국 물류창고 팔레트 위로 올라가고, 그다음부터는 징둥 직원이 바코드를 찍는다는 뜻이에요. 판 사람은 한국에 앉아서 대금만 받고요.
'언젠가' 폴더에 적혀 있던 걱정 세 개 중 두 개 반이 통째로 남의 일이 된 겁니다. 😅
심사표는 안 나왔지만, 답은 보여요
징둥이 왜 리끌로우를 골랐는지 공식 기준은 안 나왔어요. 근데 리끌로우가 10년 동안 쌓은 걸 늘어놓으면 두 가지가 보입니다.
첫째, 팔린 기록이에요. 무신사 1위, 한 모델 2만 4천 개, 마트 팝업, 돈키호테 49개 점포. 징둥은 이 브랜드가 얼마나 예쁜지 심사한 게 아니라 얼마나 팔렸는지 봤을 거예요. 직매입은 플랫폼이 재고를 떠안는 구조라서, 안 팔리면 자기 손해거든요.
둘째, 재고로 잡아도 안 썩는 물건이라는 점이죠. 안경은 시즌이 없고, 가볍고, 사이즈도 유통기한도 없어요. 김 대표가 10년 전 골랐던 바로 그 이유가 징둥 창고에서도 똑같이 통한 거예요. 재고 부담 없는 아이템을 고른 사람이 재고 부담 없는 계약을 받았습니다.
내 스마트스토어로 치면 이래요. 해외 플랫폼이 보는 건 팔로워가 아니라 '한 모델이 몇 개 팔렸나'예요. 그리고 그 물건이 자기 창고에서 6개월을 묵어도 팔리느냐고요. 이 둘이 있으면 상담 자리에 앉을 수 있어요.
지금 열린 문이 세 개예요
징둥은 징둥닷컴 안에 K소비재 전용관을 키우면서 코트라랑 같이 입점 가능성 높은 국내 기업을 계속 찾겠다고 했어요. 코트라는 징둥·알리바바 협력을 넓히고 중국 로컬 유통망 10개를 추가로 뚫겠답니다. 올 상반기 대중 소비재 수출에서 패션·의류만 33%가 뛰었으니, 담당자들도 지금은 신나 있을 때죠.
직매입까지는 아직이다 싶으면 11번가가 징둥 안에 연 '11번가 전문관'이 있어요. 벌써 350여 브랜드가 들어가 있고, 통관부터 입출고까지 11번가가 대신해줍니다. 국내 판매 기록만 있으면 문턱이 낮은 쪽이죠.
3만원짜리 안경으로 시작한 사람이 대기업 사이에 끼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어요. 우리 물건도 '한 모델 몇 개' 숫자 하나만 있으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고요. '언젠가' 폴더, 이번엔 이름부터 바꿔보세요!
박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