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단백질바 회사 트루바(TRUBAR)가 크리스마스 한정 맛 두 개를 냈어요. 페퍼민트 맛 '페퍼민트 플리즈', 생강 쿠키 맛 '진저 스냅 댓!'입니다.
몇 년 전 이 회사의 빚은 700만 달러(약 100억 원)였습니다. 팔린 건 거의 없고 빚만 쌓인 상태였죠. 그런 회사가 지난해 총매출 1억 달러 가까이를 찍었고, 올해 초엔 튀르키예 과자 회사 ETi에 1억 7,300만 달러에 팔렸어요.
연말 매대 사정부터 볼게요. 미국 대형마트 타깃의 상품 총괄 카라 실베스터는 연말 전략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님은 연말에 더 많이 즐길 거예요. 그러니 '또는'이 아니라 '그리고'죠."
실제로 타깃의 '스타킹 선물(양말 속에 넣는 작은 선물)' 진열대엔 단백질 20g짜리 페퍼민트 바크 맛 바와 단백질 핫코코아가 걸렸어요. 모던리테일도 단백질 간식이 11~12월 매대를 더 넓게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재밌는 건 트루바입니다. 트루바 바 하나의 단백질은 12g이에요. 20g짜리 옆에 세우면 함량 싸움에선 대놓고 밀리죠. 그런데도 이 회사는 연말 맛을 꺼낼 자리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단백질 숫자가 아니라 디저트 이름을 팔았거든요.
남편이 '0'이라고 부른 회사
창업자 에리카 그루스먼은 식품 업계 출신이 아니에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상업용 부동산과 영화 금융 일을 했습니다. 유행하는 다이어트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따라 하던 엄마를 보며 자랐고요.
바를 처음 내놓은 2019년, 에리카는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집을 짓고 있었어요. 그래서 운영은 "나보다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맡겼죠. 그 팀은 사람을 뽑고 돈을 썼는데 매출이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빚이 700만 달러였고요.
남편의 판정은 빨랐어요. 에리카가 팟캐스트에서 전한 남편의 말은 짧습니다. "그건 0이야. 그냥 잊어."
에리카의 대답은 달랐어요. "안 돼. 이건 내 셋째 아이야."
회사는 2021년 상장사 심플리 베터 브랜즈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 상장사는 나중에 이름을 아예 트루바로 바꿨죠. 그 뒤로는 책상 앞의 시간이었습니다. 돈을 갚아야 할 곳에 몇 시간씩 전화를 돌려 분할 상환 계획을 짰다고 해요.
원칙도 하나 있었어요. 큰 회사에는 빚을 크게 깎아 달라고 했지만, 작은 거래처는 깎지 않았습니다. "작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모자란 돈은 남편 몰래 자기 신용카드로 막았어요. 에리카는 이 시절을 이렇게 줄여 말합니다. "제가 시작했고, 망했고, 그다음엔 되살려야 했어요."
욕실 정리함에 담은 시식 상자
되살리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았어요. 차를 몰고 요가원, 운동 스튜디오,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가게는 다 돌았습니다.
손에 든 건 베드배스앤비욘드에서 산 8.95달러짜리 대나무 상자였어요. 원래는 욕실 서랍 정리용으로 파는 물건이죠. 거기에 여러 맛 바를 담고 코팅한 안내지를 뒤에 세워 카운터에 올렸습니다. 건넨 말은 짧았죠. "돈은 가게가 버세요. 제가 다시 올 때쯤엔 또 주문하고 싶으실 거예요."
욕실 정리함이 영업사원 노릇을 한 셈입니다. 그때 뚫은 도매 거래처 상당수가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문은 링크드인이었어요. 홀푸드 바이어라는 사람에겐 담당 품목과 상관없이 전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한 명이 답을 했고, 샘플을 세 번쯤 보낸 끝에 로키산맥 지역 매장에 들어갔죠.
결과가 좀 어이없습니다. 에리카 말로는 그 지역 1등 바가 됐대요. 광고비는 메타에 일주일 50달러 정도였고요. 손님들은 알록달록한 상자와 귀여운 이름에 끌려 집었고, 먹어 본 뒤 다시 샀다고 합니다.
코스트코 문도 한 번에 열리진 않았어요. 처음 들어간 캐나다 코스트코 한 지역에선 코로나가 겹쳐 성적이 시원찮았죠. 그 뒤에야 미국 코스트코에 들어갔고, 지금 트루바가 깔린 매장은 2만 1,000곳이 넘습니다.
민트 칩 손님이 고른 크리스마스 맛
트루바 바 이름을 보면 이 회사가 뭘 파는지 보여요. '오 오 쿠키 도우', '홀 로타 마키아토', '잇츠 민트 투 비 칩', '데이드리밍 어바웃 도넛'. 맛이 전부 디저트 가게 진열장에서 왔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지으면 손님이 다음 맛을 알아서 골라요. 에리카가 든 예가 이렇습니다. "쿠키 도우 먹어 봤는데 좋았어. 다른 맛은 뭐 있지? 어, 민트 칩이 있네. 나 민트 칩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새 맛을 내도 기존 맛을 갉아먹는 건 아직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이름은 여성을 앞세운 '트루우먼'이었어요. 그러다 이름을 바꿨죠. "깨끗하고 당기는 간식은 누구나 찾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트루바가 됐어요."
크리스마스 맛도 같은 줄기에서 나왔습니다. 트루바에선 민트 계열이 원래 잘 팔렸대요. 그래서 다음 한정판을 페퍼민트로 잡았어요. 민트 칩을 좋아하던 손님에게 크리스마스 옷을 입혀 준 맛이죠.
고르는 순서도 있습니다. 먼저 후기, 자사몰 주문, SNS 댓글로 수요를 가늠해요. "손님들이 다음에 뭘 원하는지 꽤 빨리 알려 줘요." 그다음 유통 파트너와 이야기하고, 출시 뒤 얼마나 빨리 팔리는지 지켜보는 식입니다. 한정판 판매량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에리카가 연말 맛을 두고 한 말은 실베스터의 '그리고'와 같은 얘기예요. "사람들은 연말을 포기하기 싫어하고, 목표도 포기하기 싫어해요. 이 바는 둘 다 갖게 해 주죠."
함량표 대신 메뉴판
단백질이라는 단어는 연말 매대에 자리를 넓혀 줬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손이 가는 건 함량 숫자보다 '아는 맛'이에요. 크리스마스에 단백질 20g을 사러 가는 사람은 드물어도, 페퍼민트 바크를 사러 가는 사람은 많잖아요.
트루바는 이걸 연말에 급하게 만들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바를 디저트 메뉴판처럼 짰고, 시즌 맛은 이미 잘 팔리는 맛의 친척으로 골랐습니다. 그러니 새 시즌이 와도 메뉴판에 한 줄만 더 쓰면 됐죠.
이 방법은 숫자 경쟁이 붙은 카테고리일수록 잘 먹힙니다. 단백질, 비타민 함량, 용량처럼 옆 상품이 숫자 하나만 높아도 밀리는 곳이요. 스마트스토어로 치면 상품명 앞자리에 '단백질 20g'을 박는 대신 손님이 아는 디저트 이름을 먼저 두는 거죠.
시즌 한정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히 새 맛을 개발하기 전에, 후기에서 자주 칭찬받는 맛의 겨울 버전부터 떠올리면 돼요. 후기 속 단어 하나로 판로를 넓힌 한국 셀러 사례도 결국 같은 곳을 봤죠. 손님이 이미 좋아한다고 말한 그 맛이요.
남편이 '0'이라고 했던 회사는 올해 초 1억 7,30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에리카는 지금도 대표 자리에 있어요. 매각 때 한 말은 이랬습니다. "우리 모습을 바꾸지 않아요. 오히려 더 밀고 갈 거예요."
그 '우리 모습'은 이번 크리스마스 포장지에 그대로 적혀 있죠. '페퍼민트 플리즈', 손님이 카페 카운터에서 주문하듯 소리 내 읽게 되는 이름입니다. 우리 상품명도 손님이 입으로 한 번 불러 보고 싶어지는 이름으로 다시 지어 봐요!
— 진저 스냅 쪽에 한 표 던지는 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