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가지 옆에 깔아놓고 팔던 신발이 3천억이 됐어요

한이룸 · 2026.09.20 · 읽는 시간 5

2016년 가을, 샌프란시스코 페리플라자 파머스마켓이었어요.

가지랑 브뤼셀 스프라우트 사이에 웬 신발 매대가 하나 깔렸어요. 로시스(Rothy's)라는, 그때는 아무도 모르던 이름이었고요. 채소 코너에 신발이라니, 자리 잘못 잡은 것처럼 보였죠.

그런데 여자들이 줄을 섰어요. 신어보려고요.

공동창업자 로스 마틴은 그날을 이렇게 기억해요. "여자들이 신어보려고 줄을 서 있더라고요. '이거 클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 채소 매대가 로시스의 사실상 첫 오프라인이었어요. 창업하고 4년째였고요. 그 4년 동안 판 신발은 0켤레였거든요.

지금 이 브랜드의 매출은 2억 2,77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070억 원이에요. 매장은 40개고요.

여기서 재미있는 게 하나 있죠. 다들 이 브랜드의 채널 확장을 '잘 늘려서 살아남은 이야기'로 읽는데, 자료를 파보니 기록이 정반대더라고요. 언제 열었는지보다 어디서 멈췄는지가 훨씬 길어요.

메인주 공장에서 만든 스무 켤레

두 사람은 신발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로스 마틴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화랑을 하던 사람이고, 스티븐 호손스웨이트는 투자은행에 있던 사람이에요. 2012년에 둘이 회사를 차렸어요.

만들려던 건 페트병에서 뽑은 실로 짠 플랫슈즈였어요. 가죽을 재단해 꿰매는 게 아니라, 스웨터처럼 통으로 짜서 신발 모양을 뽑는 방식이요. 버려지는 자투리가 거의 없거든요.

처음엔 미국에서 만들려고 했어요. 메인주 루이스턴. 1938년에 세계에서 신발을 제일 많이 만들던 동네예요. 그 공장에 1년 넘게 붙어 있었어요.

결과는 이랬습니다. "스무 켤레, 서른 켤레는 만들 수 있었어요. 그런데 똑같이는 못 만들겠더라고요."

같은 프로그램을 돌려도 어떤 건 코가 뜨고 어떤 건 밑창이 안 맞았어요. 샘플 스무 켤레는 나오는데 2,000켤레짜리 주문은 못 받는 상태였죠.

마틴이 그 시기를 말한 문장이 꽤 아파요. "제품을 제대로 못 만들었어요. 내가 만들고 싶은 신발을 그냥 못 만들었어요."

그리고 한마디 더 남겼는데, 이게 제일 솔직해요. "신발, 진짜 어렵네요."

2015년에 마틴이 스티븐한테 말했대요. 아무래도 중국에 직접 가야겠다는 얘기였죠.

실이랑 기계랑 니팅 프로그램을 싸들고 푸젠성의 스웨터 공장으로 날아갔어요.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 했고, 위챗으로 대화했어요.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때까지는 중국에 있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첫 제품이 나온 게 2016년 가을이에요. 스타일 두 개, 가격 125달러부터. 창업하고 4년, 매출 0원으로 버틴 끝이었어요.

8평짜리 첫 매장과 6년

2018년에 로시스는 100만 켤레를 팔았어요. 매출 1억 4천만 달러.

출시 3년 차에 이 숫자면, 보통 여기서 매장을 확 엽니다. 돈도 들어왔고 브랜드도 떴거든요.

실제로 그해 첫 매장을 열긴 열었어요. 샌프란시스코에, 300제곱피트짜리로요. 약 8평이에요. 동네 김밥집보다 작아요.

그리고 6년이 지났어요. 매장 수는 23개였어요.

1년에 네 개꼴이에요. 매출 1억 4천만 달러를 찍은 브랜드치고는 느려도 너무 느리죠.

마틴이 이유를 짧게 말한 적이 있어요. "작년에 매장을 훨씬 많이 열 수도 있었어요. 중요한 건 제대로 하는 거고, 제대로 될 때까지 참는 규율이에요."

참는 게 규율이라는 말. 저는 이게 이 회사의 진짜 기술이라고 봐요.

같은 시기, 같은 신발 카테고리에서 반대로 간 곳도 있죠. 올버즈는 2021년에 매장 35개로 매출 2억 7,750만 달러를 냈어요. 이듬해 매장을 58개로 늘렸고, 매출은 2억 9,780만 달러가 됐고요.

매출은 올랐죠. 그런데 매장 하나가 버는 돈은 790만 달러에서 510만 달러로 내려앉았어요. 1년 만에 35%나요.

매장을 늘렸는데 매장당 매출이 줄면, 그건 늘린 게 아니라 나눈 거예요.

처음 연 도매 문 네 개

로시스가 도매를 시작한 건 2024년이에요. 온라인에 물건을 올린 지 8년 만이었죠.

그것도 전면 개방이 아니었어요. 앤스로폴로지, 블루밍데일스, 아마존. 그리고 그해 말에 노드스트롬. 딱 네 곳이었어요. 시험 삼아 연 거죠.

프레지던트 데이나 콴벡이 왜 열었는지 설명한 적이 있어요. "이커머스만으로는 거기까지 못 가요. 고객 획득 비용 때문에요."

광고로 손님 한 명 데려오는 값은 계속 오르는데, 매장은 임차료가 고정이라 잘 팔릴수록 남는 구조가 돼요. 그래서 연 거지, 커 보이려고 연 게 아니었어요.

숫자로도 그게 보이죠. 그해 매출 2억 1,100만 달러, 1년 전보다 17% 증가. 같은 매장끼리 비교한 매출은 20% 늘었고요. 연간 EBITDA 마진은 10%를 넘겼거든요.

그리고 그때 있던 매장 26개가 전부 흑자였어요. 스물여섯 개 전부요.

그 다음이 지금이에요. 매출 2억 2,770만 달러, 매장 40개, 도매는 3배로 커졌고 노드스트롬 전국 매장에 들어가 있어요.

한때 매출의 99%가 자사몰에서 나오던 회사인데, 지금은 온라인 비중이 70%예요. 나머지 30%를 매장과 도매가 나눠 갖고 있고요.

콴벡이 모던리테일 팟캐스트에 나와서 요즘 제일 신경 쓰는 걸 말했는데, 성장 계획이 아니었어요. 성장에 정신을 뺏기지 않는 것, 그리고 너무 일찍 벌리지 않도록 참는 것이라고 했어요.

매출 3천억을 넘긴 회사 대표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좀 심심하죠. 그런데 이 회사는 10년째 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우리 판매 채널의 멈추는 자리

우리 쪽으로 옮겨볼게요.

스마트스토어 하나로 시작해서, 쿠팡 넣고, 올리브영 문 두드리고, 백화점 팝업 제안 오면 그것도 하고. 채널이 늘 때마다 매출 총액은 늘죠. 그래서 잘 굴러간다고 느껴지고요.

그런데 로시스가 8년 동안 붙잡고 있던 질문은 '채널을 더 열까'가 아니었어요. '이 채널을 몇 개까지만 열고 멈출까'였어요.

차이가 큽니다. 앞의 질문은 답이 늘 '연다'예요. 뒤의 질문은 미리 숫자를 적어야 답이 나오고요.

로시스가 실제로 쓴 순서는 이래요. 새 채널은 소수로만 연다. 그 소수가 혼자 돈을 벌 때까지 복제하지 않는다. 벌기 시작하면 그제야 같은 걸 늘린다.

매장 26개가 전부 흑자였다는 문장은, 뒤집으면 흑자가 안 될 매장은 애초에 안 열었다는 뜻이거든요.

매출 비중 5%짜리 채널 하나로 나머지를 끌어올린 브랜드 이야기를 전에 다룬 적 있는데, 결이 비슷해요. 채널 수를 늘리는 쪽이 아니라 채널마다 할 일을 정해두는 쪽이요.

당장 해볼 수 있는 건 이 정도예요. 새 채널을 열 때 '몇 개까지'와 '무슨 숫자가 나오면 늘린다'를 열기 전에 적어두는 거요.

거래처 3곳. 숫자는 작아도 돼요. 중요한 건 늘릴 조건을 미리 적는다는 거예요.

조건을 안 적어두면, 나중엔 '다들 하니까'가 조건이 돼요. 그게 제일 비싼 조건이고요.

신발 한 켤레 제대로 못 만들던 두 사람이 3천억짜리 브랜드를 만든 힘은 좋은 디자인도, 페트병 스토리도 아니었어요. 열 수 있는 문을 앞에 두고 몇 년씩 안 연 거예요. 이건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숫자를 미리 적어두면 되는 일이고요.

지금 열까 말까 고민 중인 채널이 있다면, 여는 개수 말고 멈추는 개수를 먼저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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