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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브랜드가 900만 원짜리 드레스를 팔아요

한이룸 · 2026.09.22 · 읽는 시간 5

"객단가를 좀 올려야 하는데."

직접 파는 입장이면 혼잣말로 한 번쯤 해본 문장일 거예요. 그래서 보통은 비싼 상품을 새로 기획하죠. 원단을 올리고, 사진을 다시 찍고, 이름 앞에 '프리미엄'을 붙이고요.

뉴욕에 있는 직원 6명짜리 옷 브랜드는 그 순서를 안 밟았어요. 만들던 옷을 거의 그대로 둔 채, 가격표만 스무 배 쪽으로 옮겨놨거든요.

같은 큼직한 리본, 같은 옛날 벽지 무늬. 180달러짜리 티셔츠를 팔던 팀이 지금은 6,490달러짜리 드레스를 팔아요. 한국 돈으로 치면 25만 원과 900만 원쯤이에요.

그리고 그 드레스 쪽이 지금 이 브랜드 매출의 절반이에요. 카테고리를 넓힌 얘기처럼 들리지만, 두 사람이 바꾼 건 옷이 아니었어요.

실업수당이 창업 자금의 전부였어요

태너 리치와 플레처 커셀. 미네소타대 신입생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나 연인이 됐고, 뉴욕 LIM 칼리지로 같이 편입했죠.

2020년 봄에 졸업했는데 두 사람 다 갈 회사가 없었어요. 이력서에 적을 건 인턴 경력뿐이었거든요.

그래서 아파트에서 천에 물감을 직접 칠했어요. 에코백이랑 맨투맨. 본인들은 이걸 '코로나 웨어'라고 불렀어요.

실업수당이 들어오면 그 돈을 그대로 회사에 넣었어요. 종잣돈이라고 부를 만한 게 그것뿐이었거든요.

그런데 브루클린 편집숍 예닐곱 곳이 먼저 연락을 해왔어요. 그거 우리가 팔면 안 되겠냐고요.

원래는 인테리어 쪽 일을 하려던 두 사람이었어요. 리치는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중고 가구를 사다 되팔던 사람이거든요. 위스콘신에서 뉴욕까지 놀러 갈 여비를 그렇게 만들었대요.

처음 판 것도 옷이 아니었어요. 손으로 만든 쿠션이랑 작은 소품이었죠. 편집숍들의 연락 몇 통에 진로가 통째로 바뀐 거예요.

학교에서 안 배운 걸 단추부터 배웠어요

여기가 제일 길고 지루한 구간이었어요.

두 사람은 패션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요. 파슨스도, 센트럴 세인트 마틴도 아니에요. 전공은 패션 머천다이징이었거든요.

커셀은 그때를 이렇게 말해요. "우리도 우리가 정확히 뭘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시간을 들여 스스로 익혔죠."

부자재가 뭔지, 단추는 어디서 떼오는지, 염색은 누구한테 맡기는지. 옷 한 벌을 공장에 넘기기까지 필요한 걸 하나씩 독학으로 채웠어요.

입점은 또 다른 문제였어요. 남성복도 여성복도 아닌 옷이라, 바이어들이 이걸 어느 층 어느 행거에 걸어야 할지를 난감해했거든요.

사이즈 기준도 직접 만들어야 했어요. 어떤 체형이 입어도 말이 되는 치수표가 세상에 없었으니까요.

첫 정식 컬렉션이 나온 건 2022년 봄여름이었는데요. 그 시즌에 온라인 편집숍 센스(SSENSE)가 두 사람을 매입했고, 남성관과 여성관 양쪽에 같이 걸었어요. 커셀은 "첫 공식 시즌에 우리를 데려갈 줄은 몰랐다"고 했어요.

그해 가을 쇼는 아예 집들이처럼 꾸몄죠. "옛날 뉴욕의 어느 모임에 온 것처럼 아늑했으면 했어요." 런웨이 살 돈이 없으니 사람 부르는 방식을 바꾼 거죠.

이듬해엔 CFDA·보그 패션 펀드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어요. 배드버니가 타임 표지에서 이들의 리본 블레이저를 입었고요.

이름은 났어요. 그런데 180달러짜리 티셔츠를 아무리 많이 팔아도, 직원 여섯 명이 뉴욕에서 옷 만들며 버티기엔 빠듯했거든요.

카테고리를 넓힌 게 아니라, 옷을 다른 날에 놓았어요

2024년에 두 사람은 웨딩 컬렉션을 냈어요. 라인을 정식으로 연 게 아니라, 딱 한 번 내보고 마는 일회성이었죠.

디자인은 하던 그대로였어요. 과하게 큰 리본, 색이 들어간 장식, 1940년대 냄새가 나는 레이스.

커셀의 설명이 재밌어요. "우리한테 딱 맞는 틈새였어요. 결혼식 옷은 수십 년째 다 똑같이 생겼거든요. 좀 더 재미있는 걸 찾는 사람한테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고요."

이유가 하나 더 있었어요. "퀴어 커플이 결혼식 옷을 사러 다니는 건 정말 힘들어요. 자기들을 알아봐 주는 가게가 없거든요."

한 번만 내보려던 그 컬렉션이 바로 나갔어요. 2년이 지난 지금, 예복이 매출의 절반을 책임져요.

가격표를 보면 이유가 바로 보이는데요. 평상복은 180~640달러대인데, 웨딩 쪽은 3,290달러짜리 블레이저에 7,990달러짜리 비즈 가운까지 올라가요.

같은 리본인데 자릿수가 하나 늘었어요. 손님 취향은 그대로죠.

티셔츠 한 장에서 남기는 돈과 가운 한 벌에서 남기는 돈은 아예 단위가 달라요. 여섯 명이 붙어서 해도 굴러가는 장사가 그제야 됐어요.

요즘 고민은 품절이에요. 커셀은 예복 재고를 수요만큼 채워두는 게 계속 과제라고 했어요.

도매는 일부러 안 늘렸어요. 리치는 도매 비중이 20% 선에 머물러 있다며, 자사몰 쪽에 계란을 몰아 담고 있다고 말해요. 수백만 원짜리 옷은 입어보고 고쳐 입는 과정이 곧 상품이라, 남의 매장에 맡기기 어렵거든요.

외부 투자는 아직 한 푼도 안 받았어요. 다운타운 맨해튼 쇼룸에서 두 사람이 직접 손님을 맞고요. 서울에도 이 브랜드를 찾는 손님이 꽤 있대요.

그 쇼룸 풍경이 브랜드를 잘 보여주죠. 드레스나 정장을 보러 온 손님이 빈티지 촛대 하나를 들고 나가는 게 흔한 일이래요.

우리 상품이 제일 비싸지는 날은 언제일까요

두 사람이 한 건 새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어요. 원래 팔던 물건을, 그 물건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날 위에 올려둔 거예요.

일상복 매대에서 이 리본은 '개성 있는 브랜드 중 하나'였어요. 결혼식 매대에 놓이는 순간 '여기밖에 없는 것'이 됐죠.

물건은 같은데 옆에 선 경쟁자 수가 달라졌어요. 가격표는 거기서 올라갔고요.

한국으로 옮기면 이런 모양이에요. 2만 원짜리 앞치마를 팔고 있다면, 개업 선물용 자수 앞치마를 한 종류만 올려보는 식이죠. 돌잔치, 상견례, 집들이, 개업. 손님이 가격을 덜 따지는 날은 생각보다 자주 돌아와요.

작게 시작한 것도 중요해요. 두 사람은 라인을 연 게 아니라 한 번만 내봤어요. 안 되면 그 시즌으로 끝, 되면 재고를 못 댈 만큼 팔리는 거죠. 실제로 뒤쪽이 됐고요.

단서 찾는 일도 어렵지 않아요. 후기와 문의함에 이미 적혀 있거든요. "결혼식에 신고 갔어요", "엄마 생신 선물로 샀어요" 같은 문장이요.
틈새 시장에서 전문가 되는 법이 별게 아니라, 손님이 이미 말해준 날짜를 물건으로 만들어주는 일이에요.

이 브랜드가 다음에 낸다는 건 수영복이래요. 휴가라는 또 하나의 '날'이죠. 리본 달린 수영복이 예복만큼 먹힐지는 지켜보면 알 것 같아요.

그 전에 우리 쪽 후기부터 한 번 훑어보면 어떨까요. 손님이 우리 물건을 들고 나간 날이 하나쯤은 적혀 있을 거예요!

빈티지 촛대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결제는 못 누른 민지가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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