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만 건.
현대백화점 AI 쇼핑 어시스턴트 '헤이디'가 온라인몰 더현대 하이에서 추석 선물을 골라준 횟수예요. 백화점부터 오픈마켓까지 대화형 쇼핑 창구가 한꺼번에 열리면서 쌓인 숫자죠.
지난 #92에서 카카오톡 안에 상품 추천 칸이 열렸는데 들어간 곳은 열 곳뿐이라고 전해드렸어요. 그 사이 국내 유통사들이 각자 자기 대화창을 켰습니다. 초대장 한 장을 기다리던 자리가 여러 군데로 늘어난 거예요.
거기다 이 창구들엔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손님한테 받는 게 상품명이 아니라 조건이라는 점이요.
대화형 쇼핑이 묻는 세 가지
헤이디 채팅창이 손님한테 받는 건 세 가지예요. 선물을 준비하는 상황, 예산, 그리고 받는 사람의 연령대.
"회사 팀장님께 드릴 15만 원대 세트"처럼 치면 거기 맞는 상품이 걸러져 나오는 구조죠. 누적 이용자는 약 180만 명, 하루 이용 건수는 2만 건을 넘겼고요.
걸러지는 기준을 하나씩 떼어 보면 전부 숫자와 분류예요. 가격대, 카테고리, 받는 사람 유형. 셋 다 상세페이지 이미지 안에 그려 넣는 정보가 아니라 상품 등록 화면 칸에 적어 넣는 값이죠.
현대백화점은 이번 명절에 온라인 선물 품목을 100여 개에서 700여 개로 늘렸어요. 하지만 품목이 일곱 배가 돼도 조건에 안 걸리는 상품은 그냥 700개 중 하나로 남습니다.
15자를 넘긴 질문
네이버 AI 쇼핑 에이전트 쪽 숫자는 더 노골적이에요. 이용자의 70% 이상이 15자가 넘는 긴 질문을 넣고 있고, 이 창구를 통한 거래액은 2.7배 넘게 늘었습니다.
15자가 왜 기준이 되냐면요. 짧은 검색어는 단어 하나로 끝나지만, 15자를 넘기는 순간 거기 조건이 두세 개씩 붙기 때문이에요.
네이버가 예로 든 질문이 "집들이용 밀키트로 뭐가 좋을까?"였는데요. AI는 상품을 바로 나열하지 않고 '비주얼 좋은 메인 요리', '파티 플래터', '간편 국물 요리'처럼 기준부터 세운 다음 상품을 붙입니다.
롯데온 패션 AI는 한발 더 나가요. "출근용 블라우스"나 "하늘하늘한 티셔츠" 같은 감성 표현까지 알아듣는다고 하죠.
물론 '하늘하늘한'이 걸리려면 어딘가에 소재와 두께가 글자로 적혀 있어야 해요. 시폰인지 린넨인지가 이미지 안 글씨로만 있으면, 그 상품은 아예 후보 목록에 못 들어갑니다.
통이미지 상세페이지가 AI 검색에서 불리해지는 이유는 여기서 다시 반복되고요.
아홉 칸 중 사진 한 칸
이게 국내 얘기만은 아니에요. 오픈AI가 공개한 상품 피드 규격(챗GPT가 판매자한테서 상품 정보를 받아가는 양식)을 열어 보면 더 분명합니다.
필수 칸이 아홉 개예요. 상품 ID, 상품명, 설명, 링크, 브랜드, 판매자명, 대표 이미지, 재고 상태, 가격. 이 중 이미지는 한 칸이고 나머지 여덟 칸은 전부 글자죠.
상품명은 150자, 설명은 5,000자까지 넣으라고 적혀 있어요. 게다가 설명은 꾸밈 없는 순수 텍스트로 달라고 명시돼 있고요.
옵션 처리 방식은 더 노골적이에요. 색상·사이즈 같은 선택지는 {"color":"Black","size":"10"} 형태로 넣으라고 예시까지 박아뒀습니다. 색은 검정, 사이즈는 10이라는 짝이요.
'1번 / 2번 / 3번'은 이 양식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AI가 손님한테 "1번을 추천드려요"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요.
'선택1'이라고 적힌 자리
그래서 오늘 열어볼 화면은 상세페이지 편집기가 아니라 상품 등록 화면이에요.
쿠팡 윙에는 '검색옵션'이라는 칸이 있습니다. 여기 넣은 값은 검색 필터로 쓰이는데, 입력한 값이 검색어로 자동 설정돼요. 옵션명은 카테고리별로 정해진 이름을 그대로 쓰고, 값은 직접 적으면 됩니다.
스마트스토어에는 상품 주요정보 안에 '상품속성' 칸이 있고요. 속성값이 하나면 단일형, 여러 개면 다중형, 범위로 들어가면 범위형으로 나뉩니다. 카테고리마다 뜨는 속성명이 달라서, 안 채우고 넘어가면 그 칸은 영영 빈칸으로 남아요.
이 자리는 광고비를 태울 수가 없는 칸이에요. 대신 채우는 데 드는 돈도 0원이고요.
제일 잘 나가는 상품 하나만 열어서 옵션명부터 보시면 됩니다. '선택1'이라고 적혀 있으면 '블랙 / 260mm / 5켤레'로 바꾸고, 검색옵션에서 비어 있는 속성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 채우면 오늘 몫은 끝이에요.
저도 첫 스토어 옵션명이 '1번·2번·3번'이었는데, 두 달 뒤엔 저조차 뭐가 1번인지 기억을 못 했지 뭐예요. AI가 제 상품 이름을 안 불러준 게 아니라, 제가 이름을 안 지어준 거였죠.
대화창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텐데, 다행히 새로 만들 건 없어요. 이미 있는 빈칸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라 오늘 저녁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