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마트 타깃 900개 매장에 새 스티머가 깔렸어요. 값은 89.99달러, 우리 돈 12만 원대예요.
만든 회사 직원은 네 명이었고요.
미국 마트 입점 이야기는 보통 "드디어 뚫었다"로 끝나잖아요. 뉴욕의 작은 의류관리 브랜드 노리(Nori)는 순서가 반대였어요. 물건보다 날짜가 먼저 정해졌거든요.
"스티머를 만들어 오세요. 내년 7월까지요"
지난가을, 노리는 타깃 바이어들과 라인 리뷰 자리에 앉았어요. 라인 리뷰는 마트가 다음 해 매대를 어떤 상품으로 채울지 정하는 회의예요. 우리로 치면 편의점 MD 앞에서 하는 상품 제안 회의쯤 되죠.
거기까지 간 것도 쉽진 않았어요. 그 전 봄에 타깃은 노리의 손잡이형 다리미 '노리 프레스'를 115개 매장에 9주만 놓아봤거든요. 4주 만에 다 팔렸어요. 기대치를 85% 넘겼고, 자사몰 매출은 200% 뛰었죠. 그래서 전국 매대로 올라갔어요.
그런데 가을 회의에서 바이어가 꺼낸 건 축하가 아니었어요.
"다림질 쪽에선 정말 잘됐죠. 그런데 스팀 쪽 성장률이 훨씬 높거든요."
풀어 쓰면 이런 뜻이에요. 스티머를 만들어 오세요, 이듬해 7월 매대에 올릴 거니까요.
그때 노리에 스티머는 없었어요. 설계도도, 금형도, 시제품도요. 손에 쥔 건 열 달짜리 달력 한 장이었죠.
"첫 제품 때는 2년이 걸렸거든요"
코트니 톨과 애나벨 러브는 웨이크포레스트대 2학년 때 룸메이트였어요. 코트니가 기숙사에서 고데기로 셔츠 주름을 펴는 걸 애나벨이 봤고, 거기서 시작됐죠.
졸업하고 둘 다 회사에 다녔어요. 코트니는 리서치 회사, 애나벨은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낮엔 일하고 밤과 주말에 제품을 팠죠.
제품 개발사를 열아홉 군데 만났어요. 하드웨어 업계는 남자가 7할이라, 스물넷 여자 둘이 물건을 만들겠다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일이었고요.
"영감은 좁아터진 뉴욕 아파트에서 느낀 순전한 짜증에서 나왔어요." 애나벨의 표현이에요.
첫 제품은 2년 넘게 걸렸어요. 전원 코드를 10만 번 돌려보는 식의 규제 시험만 10만 건 넘게 치렀고요. 친구·가족한테 30만 달러를 받아 시작해 모두 130만 달러를 모았고, 코트니가 먼저, 애나벨이 반년쯤 뒤에 회사를 그만뒀죠.
노리 프레스는 120달러에 나왔어요. 9개월 만에 100만 달러를 팔았고, 그 뒤로 매출이 거의 해마다 배로 뛰어서 2,080만 달러까지 갔어요. 지난해엔 3,000만 달러, 50% 성장했죠.
숫자만 보면 매끈한데, 본인들이 꼽는 가장 큰 실수는 따로 있어요. 재고 예측이요.
많이 주문하면 현금이 묶이고, 적게 주문하면 급하게 비행기로 물건을 실어 와야 했어요. 항공 운송비는 그때마다 실수의 청구서였죠.
또 하나는 완벽하게 만들려다 시장에 내놓는 걸 늦춘 것. 유료 광고 테스트도 뒤로 미뤘어요. 제품이 좋아질수록 검증은 계속 밀렸고요.
이 두 가지를 기억해 두세요. 열 달짜리 두 번째 제품에서 정확히 반대로 움직이거든요.
"하나를 고치면 다른 하나가 망가져요"
시제품은 최소 여섯 번 갈아엎었어요.
스티머 쓰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건 두 가지예요. 물이 튀는 것, 새는 것. 그걸 잡으려고 물을 빨리 끓게 만들었더니 이번엔 손잡이가 뜨거워졌어요.
"하나를 고치면 다른 하나가 망가져요." 코트니가 그 구간을 이렇게 정리했어요.
두더지 잡기 게임인데, 열 달 뒤에 마트 매대가 열린다는 점만 달랐죠.
최종 설계는 큰 타원 안에 작은 타원형 열판을 넣는 모양으로 갔어요. 증기가 고르게 퍼지게요. 물은 25초 만에 데워지고 20분 넘게 연속으로 뿜어요.
시제품이 정해진 뒤에도 공장과 일곱 번을 더 주고받았죠. 그 테스트 물건이 어디로 갔냐면, 코트니의 뉴욕 아파트예요. 대표 집이 품질검사실이 된 거죠.
보통 이런 건 자사몰에 먼저 풀어서 후기로 고쳐요. 노리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첫 무대가 마트 매대였으니까요.
"그냥 경쟁하려고 새로 만드는 게 아니에요. 더 좋게 만들어야 했죠."
"그쪽 시험이 언제 끝날지는 우리가 못 정해요"
열 달 안에서 노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제품 결정이 아니었어요. 못 줄이는 칸을 달력에 먼저 박는 거였죠.
전기 제품이라 UL 안전 인증을 받아야 해요. 우리로 치면 KC 전기용품 안전확인이죠. 서류 넣고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쪽 시험이 언제 끝날지는 우리가 정할 수가 없어요." 코트니가 이 구간을 그렇게 말해요.
다음 칸은 중국 생산이었어요. 샘플 한 번 왕복에 몇 주씩 날아가는 구간이죠. 그래서 리드 엔지니어를 아예 중국 공장으로 보냈어요. 네 명짜리 회사에서 한 명을 통째로요.
"규모를 생각하면 전원이 달라붙을 수밖에 없었어요."
마지막 칸은 돈이었죠. 노리는 관세를 낼 각오로 예산을 잡아뒀는데, 미국 대법원이 광범위 관세를 뒤집으면서 그 돈을 전액 돌려받았어요. 그 환급금으로 뭘 했냐면요, 초도 물량을 배가 아니라 비행기에 실었어요.
예전엔 발주를 잘못해서 어쩔 수 없이 쓰던 항공 운송비잖아요. 이번엔 마감일을 사는 값이죠.
그렇게 7월에 매대에 올라갔어요. 900개 매장, 89.99달러. 매대 끝 진열대까지 얻었고요.
개발이 끝나서 매대에 간 게 아니에요. 매대 날짜가 개발을 잘라낸 거예요.
"그래서 언제까지 돼요?"
요즘은 오프라인 매대를 다시 들여다보는 브랜드가 부쩍 늘었어요(2025년 오프라인의 반격). 편의점 신상 코너, 홈쇼핑 편성, 백화점 팝업, 네이버 기획전. 하나같이 날짜가 먼저 오는 일들이에요.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하죠. 물건이 완성되면 제안하자.
그런데 자리를 주는 쪽이 재는 건 완성도가 아니에요. 그 날짜에 물건을 댈 수 있느냐예요. 바이어 머릿속 달력엔 이미 7월 매대가 잡혀 있고, 그 빈칸을 메울 팀을 찾는 거고요.
노리가 쓴 방법에 신기한 기술은 없어요. 달력을 거꾸로 채웠을 뿐이에요. 내가 못 줄이는 칸을 먼저 박고, 줄일 수 있는 칸을 남은 자리에 맞춰 잘라내는 것.
못 줄이는 칸은 대개 정해져 있어요. KC 인증 기간, 금형 뜨는 시간, 공장 리드타임, 통관. 여기는 내 의지가 안 통해요.
줄일 수 있는 칸도 정해져 있고요. 시안 라운드 수, 컬러 수, 옵션 수, 그리고 '조금만 더 다듬으면'이라는 마음.
노리가 잘라낸 게 정확히 그거예요. 시제품을 여섯 번에서 끊었고, 자사몰 선출시를 포기했고, 대신 엔지니어 한 명과 대표 아파트를 검사실로 썼어요. 첫 제품 때 2년을 쓰게 만든 완벽주의를 이번엔 달력이 대신 끊어준 셈이죠.
다음에 누군가 "그래서 언제까지 돼요?"라고 물으면, 그 자리에서 달력을 거꾸로 채워보면 어때요. 네 명이 해냈으면 두 명도 해볼 만해요!
부산 책상에서, 민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