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하루 30통 오는 전화, 대표가 직접 받아요

한이룸 · 2026.09.16 · 읽는 시간 5
"저 AI 로봇들하고는 달라 보이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샤워기를 파는 벤저민 픽스가 고객응대 얘기를 하다 꺼낸 문장이에요.

다들 상담 챗봇 붙이느라 바쁠 때 이 사람은 반대로 갔어요. 올여름에 사람이 받는 전화번호를 하나 열었거든요.

하루에 30통쯤 울려요. 그중 상당수를 픽스가 직접 받아요. 몇 시간씩요.

직원 넷인 회사에서 대표가 수화기를 붙들고 있으면, 보통은 "저러다 회사는 누가 굴리나" 싶죠.

근데 이 회사, 누적 매출이 600만 달러예요. 그리고 저 전화는 비용 항목이 아니에요.

창업하고 24개월째, 아직 팔 물건이 없었어요

픽스는 배관·수전 업계에서 15년을 보낸 사람이에요. 아메리칸스탠다드, 그로헤 같은 큰 회사에서 제품을 맡았고요.

그 업계 주력 고객이 누군지 아세요? 50대 남성이에요. 집 가진 사람, 현장에서 시공하는 사람, 도매로 떼가는 바이어.

마지막 회사에서 "밀레니얼용 컬렉션을 하나 만들어보라"는 주문을 받았대요.

그런데 파볼수록 답이 안 나왔어요. 색만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라 유통도, 포장도, 말투도 전부 갈아야 하는 일이었거든요. 차라리 새로 차리는 게 빠르겠더래요.

2020년, 디자이너 그레그 라이네커와 둘이 시작했어요. 둘 다 뉴욕 세입자였죠.

세입자는 욕실에 못 하나 못 박잖아요. 보증금이 걸려 있으니까요.

문제는 첫 제품이 나온 게 2022년 10월이라는 거예요. 창업하고 꼬박 2년요.

그동안 매출은 0이었고, 자금은 친구랑 가족한테 받은 100만 달러가 전부였어요. 드릴 없이 붙였다 떼도 자국이 안 남는 접착 방식 하나 잡는 데 그 시간이 다 갔죠.

첫 물건은 69달러짜리 핸드샤워와 99달러짜리 슬라이드바. 노랑, 빨강, 분홍, 초록. 크롬색이 아닌 샤워기였어요.

근데 더 곤란한 게 따로 있었어요. 자기들이 누구한테 파는지를 정확히 몰랐다는 거예요.

"젊은 세입자"는 가설이었지 얼굴이 아니었거든요. 4명이 굴리는 회사엔 고객 조사를 맡길 대행사도 없죠.

고객 절반이 개를 키운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2024년 7월, 이 팀이 손댄 건 구매 후 설문이었어요. 별점 몇 개냐 묻는 짧은 거 말고, 길게 캐묻는 쪽으로 바꿨죠.

돌아온 답이 좀 뜻밖이었어요.

고객의 54%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었어요. 호스가 70인치로 길고 수압이 세니까 개 씻기기가 편했던 거예요. 샤워기를 사람 씻으라고만 산 게 아니었던 거죠.

10%쯤은 자기를 논바이너리라고 밝혔어요. 그리고 쨍한 색상들은 흑인 고객들한테 유독 반응이 좋았죠.

여기서 팀이 한 선택이 재밌어요. 광고비를 올린 게 아니라 사진 속 사람을 바꿨어요.

그 고객들을 브랜드 화보에 직접 캐스팅했고, 그들이 찍은 콘텐츠를 사서 썼고, 새 제품을 만들 때 의견을 물었어요.

4명짜리 팀이 누적 600만 달러를 쌓은 게 이 구간이에요.

그래서 올여름엔 전화번호를 열었어요

설문은 다 팔고 난 다음에 오는 답이잖아요. 사기 직전에 멈춘 사람은 설문지에 안 잡히거든요.

세입자가 결제 버튼 앞에서 멈추는 지점은 대충 정해져 있어요. "우리 집 배관 규격에 이게 맞나?" "떼면 진짜 자국 안 남나?" "집주인이 알면 뭐라 안 하나?"

이건 FAQ 페이지로 안 풀려요. 저 질문들은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라 안심을 원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원이 받는 번호를 열었어요. 픽스는 손님과 "동료처럼, 친구처럼" 이야기한다고 설명했어요.

그 통화에서 뭐가 나오냐면요. 우리 제품을 어디서 처음 봤는지, 무슨 색을 고민 중인지, 배송을 좀 당길 수 없는지, 슬라이드바는 뭐가 다른지.

상세페이지 첫 화면과 광고 문구에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는 말들이에요. 실제로 이 팀은 통화 기록을 고객 여정 파악과 마케팅 설계에 쓰고 있고요.

설문에서 통화로. 묻는 자리가 결제 앞으로 한 칸 당겨진 거예요.

커피 구독 회사 리뷰엔 상담원 이름이 적혀 나와요

같은 판단을 한 회사가 둘 더 있어요.

주방용품 브랜드 메이드인은 AI 챗봇도 돌려요. 그런데 전화선을 같이 열어두고, 직원들이 페이스타임이나 줌으로 손님과 화면을 켭니다.

그 전화를 받는 사람이 일반 상담원이 아니에요. 전문 셰프와 라인쿡이 앉아 있어요. 팬을 어떻게 길들이는지, 계란이 왜 자꾸 눌어붙는지 같이 봐주는 거죠.

마케팅 총괄 린지 잭슨의 문장이 인상적이에요. "시즈닝이 왜 안 먹는지는 봇이랑 얘기할 수 없잖아요." 하나 더 있죠. "손님이 '상담원!' 하고 소리 지르게 만드는 회사는 되기 싫어요."

트레이드커피는 2018년 출발할 때부터 전화를 받아왔어요. 상시 여섯 명, 연말 선물 시즌엔 계약직을 더 붙이고요.

상담원 채용 조건이 하나 있는데, 바리스타를 해본 사람이어야 해요. 그래서 한 통이 30분까지 가요. 원두가 왜 신지, 분쇄도를 어디에 맞출지 같이 따져보거든요.

성장 총괄 제시카 크리스털의 설명은 이랬어요. "AI 때문에 진짜 사람과 연결되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잖아요. 저희는 그걸 아주 쉽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뭐가 남았냐면, 리뷰예요. 후기에 통화한 직원 이름이 적혀 나와요. 그 사람 때문에 구독을 계속한다고요.

통화 내용은 거래하는 로스터들한테 넘어가고, 마케팅 문구도 거기서 고쳐요.

우리 쪽 문의함과 고객 전화는 누가 받나요

세 곳의 공통점은 "사람을 앉혔다"가 아니에요. 그거면 인건비 늘린 얘기죠.

공통점은 두 개예요.

하나. 전화를 받는 사람이 그 카테고리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에요. 바리스타, 셰프, 15년 차 수전 담당자.

둘. 그 통화가 버려지지 않아요. 상세페이지로, 광고 문구로, 거래처로 돌아가죠.

타이밍도 나쁘지 않아요. 미국 성인 2,017명에게 물었더니 79%가 AI 상담원보다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답했어요. 89%는 사람에게 연결되는 선택지가 항상 있어야 한다고 했고요. 한국 자료를 봐도 AI 챗봇보다 사람과 대화하길 원하는 고객이 93.4%예요.

내 스마트스토어로 옮기면 이렇게 되죠.

톡톡 문의함에 쌓인 질문을 두 더미로 갈라보세요. 배송 언제 오냐, 교환 되냐 같은 처리형이 한 더미. "제 피부에 써도 되나요", "저희 집 싱크대 폭이 60인데 맞을까요" 같은 적합성 질문이 다른 더미고요.

앞쪽은 자동응답에 넘겨도 괜찮아요. 뒤쪽이 매출이에요. 그건 상품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받아야 하는데, 그게 대개 대표 본인이잖아요.

그리고 뒤쪽 더미에서 제일 자주 나온 질문 세 개를 골라 상세페이지 첫 화면으로 올려보세요. 답을 이미 아는 손님은 안 물어보고 그냥 사거든요.

챗봇을 끄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메이드인도 챗봇을 굴리고 있고, 상담 창구를 세일즈 창구로 바꿔 객단가를 올린 사례도 이미 나와 있으니까요.

비어 있는 자리는 다른 데예요. 자동응답 뒤에 숨겨둔 연락 수단 하나를 앞으로 꺼내서, 이게 우리 차별점이라고 말해주는 자리요. 거기 서 있는 브랜드가 아직 별로 없어요.

이번 주에 볼 건 하나예요. 문의함에서 "이거 저한테 맞을까요" 쪽 질문이 몇 개인지. 그 숫자가 생각보다 크면, 우리 가게에도 저 자리가 비어 있다는 뜻이에요. 반가운 소식이죠!

샤워기 색 바꾸고 싶어진 민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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