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6.
비스듬히 찍은 영수증 사진 한 장에서 주문번호를 읽고, 그 옆에 붙여 낸 숫자예요. 클라우드플레어가 프리뷰로 공개한 영수증 정리 AI 'Clairic'은 읽어 낸 값마다 이렇게 "얼마나 자신 있는지"를 0~1 사이 점수로 같이 내놓습니다.
같은 영수증에서 단가·소계·세금은 전부 0.999를 넘었어요. 여덟 개 항목 중 0.9 아래로 내려간 건 주문번호와 구매 시각, 둘뿐이었죠.
월말에 광고비 영수증과 택배 청구서를 엑셀로 옮겨 본 입장이면 이 숫자가 반가울 거예요. 지금까지는 AI한테 사진을 맡겨도 어느 숫자가 틀렸는지 알 길이 없어서, 결국 원본과 한 줄씩 다시 맞춰 봐야 했거든요.
흐린 데서만 점수가 떨어졌어요
Clairic은 글을 지어 쓰지 않습니다. 금액·날짜·번호처럼 뽑을 항목을 정해 주면, 그 값만 숫자나 날짜 형태로 돌려주는 '추출 모델'이에요. 클라우드플레어는 이걸 "새로운 계열의 첫 모델"이라고 소개하면서, 점수를 붙인 이유도 분명히 적었습니다. 어떤 값을 한 번 더 봐야 하는지 고르라는 거죠.
재밌는 건 점수가 낮게 나온 자리예요. 주문번호(0.776)와 구매 시각(0.831)은 사진에서 글씨가 번지기 쉬운 부분이었거든요. 클라우드플레어도 이 사진을 두고 "글씨가 완벽하지 않고, 각도도 읽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적어 뒀습니다. 영수증을 반듯하게 찍는 사람이 드문 건 어느 나라나 같은가 봐요.
장부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영수증 숫자 8개를 다 대조하던 일이, 점수 낮은 2개만 다시 보는 일로 줄어들죠. 금액이 의심될 때 원본을 펼치는 범위가 확 좁아지는 거예요.
송장번호 자리에 세금을 적을 뻔했어요
클라우드플레어가 보여 준 또 하나의 예시는 파손 상품 문의 메일이에요. 주문번호와 배송일은 거의 1점으로 읽었고, 메일에 따로 적히지 않은 결제 총액도 상품값 649달러에 세금 52.10달러를 더해 701.10달러로 냈습니다.
문제는 송장번호였어요. 메일에 송장번호가 아예 없었거든요. 모델이 속으로 고른 후보는 엉뚱하게도 세금 금액 52.10달러(확신도 0.416)였습니다.
Clairic은 이 후보를 답으로 내놓지 않았어요. 송장번호는 '없음'으로 비워 두고, 찍었던 후보는 guess라는 자리에 따로 보여 줬죠. 할인이 없는 영수증에서도 할인 항목은 '없음'으로 돌려줬고요.
송장번호 자리에 세금을 자신만만하게 적는 신입보다, "이건 못 찾았어요" 하고 빈손으로 오는 신입이 장부엔 훨씬 고맙습니다. 없는 할인이 매입 장부에 한 줄 끼어들면, 다음 달 정산 대조에서 숫자가 왜 안 맞는지 찾느라 헤매게 되니까요.
백 줄 합계는 아직 엑셀 몫이에요
두 숫자 더하기는 해냈지만, 클라우드플레어는 한계도 같이 적었습니다. "읽기는 강하지만, 여러 단계 계산은 아직"이라는 거예요. 여러 줄을 모아 합치는 계산도 약하다고 했고요. 그래서 권하는 방법이 "값은 Clairic이 읽고, 계산은 코드가 하라"입니다.
셀러 장부로 가져오면 간단합니다. 영수증 40장의 금액은 AI가 읽고, 합계는 엑셀 SUM이 내면 돼요. 원래 엑셀이 제일 잘하는 일이죠.
지금 쓸 수 있는 조건도 짚어 둘게요. Clairic은 클라우드플레어의 개발자용 서비스 Workers AI에서 코드나 API로 부르는 방식이고, 아직 프리뷰 단계입니다. 요금은 입력 100만 토큰(토큰은 AI가 글자를 세는 단위)에 0.10달러, 약 140원이에요. 글을 지어 쓰지 않으니 출력 요금은 붙지 않습니다.
Workers AI는 하루 1만 뉴런(클라우드플레어의 사용량 단위)까지 무료인데, Clairic으로 치면 입력 약 110만 토큰어치입니다. 영수증 사진 한 장이 몇 토큰인지는 공개되지 않아서, 하루 몇 장까지 공짜인지는 직접 돌려 봐야 알 수 있어요.
못 믿을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공식 문서에 지원 언어가 적혀 있지 않아서, 한국어 영수증을 얼마나 읽는지는 공개된 결과가 없어요. 공개된 영수증 예시도 한 장뿐이고, 클라우드플레어 스스로 점수의 정확도는 "측정한 것이지 보장한 건 아니다"라고 적었죠.
그래서 몇 점부터 믿을지는 클라우드플레어도 정해 주지 않았어요. 손으로 이미 맞춰 둔 지난달 영수증 몇 장에 먼저 돌려 보고, 점수 낮은 숫자와 실제로 틀린 숫자가 겹치는지 보는 게 순서입니다.
영수증 정리 AI에 물어볼 건 인식률이 아니에요
영수증 정리 앱이나 장부 서비스를 고를 땐 보통 인식률부터 봐요. 그런데 인식률이 아무리 높아도, 틀린 숫자가 어디 숨었는지 모르면 결국 전부 다시 봐야 하죠.
Clairic이 보여 준 건 그 반대입니다. 숫자마다 점수가 붙어 있으면, 사람이 볼 곳은 장부 전체가 아니라 점수 낮은 몇 줄로 줄어들어요. 부가세 신고 전 영수증 대조가 '처음부터 끝까지'에서 '표시된 곳만'으로 바뀌는 거예요.
클라우드플레어는 이 모델 파일(오픈 웨이트)도 곧 공개하겠다고 했어요. 다른 장부 서비스가 가져다 쓸 길도 열려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 다음에 영수증 앱을 써 볼 일이 생기면, 인식률 대신 이 질문 하나를 들고 가 보세요. "숫자마다 얼마나 자신 있는지도 같이 보여 주나요?" 대답이 '네'라면, 영수증 더미 앞에서 보내는 밤이 확 짧아질 거예요!
— 영수증은 오늘도 비스듬히 찍은 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