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가 AI 개발자에게 안내한 주소, walmart.com/agents를 이 기사를 쓰면서 열어 봤습니다. 첫 화면은 "Robot or human?(로봇인가요, 사람인가요?)"이었어요.
버튼을 꾹 눌러 사람임을 증명하라는 그 화면이죠. 월마트가 AI 쇼핑 에이전트를 손님으로 받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 풍경입니다.
AI 쇼핑 에이전트는 손님 대신 상품을 찾고 결제까지 하는 AI를 말합니다. 존 퍼너 월마트 CEO는 샌프란시스코 '마스터스 오브 스케일' 행사에서 이 AI들이 월마트에서 직접 장을 볼 수 있는 문과 규칙을 내놨어요.
지난 #94에서는 아마존이 메타의 AI 비서 '뮤즈'를 막고, 쇼피파이가 그 손님을 받아 준 이후를 다뤘는데요. 이번엔 미국 최대 유통사가 아마존과 정반대 쪽에 섰습니다. 테크크런치는 기사 제목을 '아마존이 AI 에이전트를 막는 사이, 월마트는 환영 매트를 깔았다'로 달았죠.
월가도 반응했습니다. 미즈호의 데이비드 벨린저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에 "최고경영진의 추진력과 의지가 이걸 실제 사업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같다"고 했어요. '실험'으로 불리던 AI 대리 구매에 대형 유통사가 처음으로 자기 규칙을 붙인 겁니다.
결제 버튼 앞에서 멈춘 뮤즈
사실 월마트도 처음부터 문이 열려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뮤즈는 월마트의 공식 파트너였는데도, SNS에는 "뮤즈가 월마트에서 결제를 못 끝낸다"는 불만이 올라왔어요.
월마트 대변인은 테크크런치에 "의도한 게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뮤즈가 걸린 곳은 사람인지 확인하는 그 버튼이었죠. AI가 그 단계에 끼어들면 확인이 실패하고, 그대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월마트는 그 버튼 옆에 AI만 따로 다니는 문을 냈어요. 이름은 에이전트 게이트웨이(Agent Gateway)입니다.
게이트웨이는 MCP(AI와 서비스를 잇는 공통 규격으로, 앤트로픽이 처음 만들었죠) 방식의 접속 창구예요. 사람용 화면을 한 칸씩 클릭하는 대신, AI가 이 창구로 바로 상품을 찾고 주문합니다.
월마트는 발표문에서 AI가 사람용 단계를 밟는 방식이 "느리고 오류가 잦다"고 적었어요. 그러니 제가 열어 본 버튼 화면은 사람 손님이 드나드는 문입니다. 사람은 거기서 계속 확인받고, AI는 옆문으로 들어오라는 뜻이니까요.
AI가 받는 카드엔 한도가 있습니다
둘째 장치는 한 달 안에 나올 에이전트 프로필입니다. 손님 계정 안에 AI마다 별도 프로필이 생기고, AI가 산 주문은 따로 모여 보여요.
기본값은 매번 손님이 승인하는 방식입니다. 원하면 한도를 정해, 그 안에서는 AI가 알아서 사게 둘 수 있는데요. 월마트가 든 예시는 50달러, 100달러, 200달러였습니다.
월마트는 이걸 신용카드에 가족 사용자를 추가하는 일에 비유했어요. 한국식으로 옮기면 중학생 자녀에게 한도 정한 체크카드를 하나 쥐여 주는 셈이죠. AI에게도 이제 용돈 한도가 생겼습니다.
약관도 따로 냈습니다. AI는 손님이 뜻한 것 이상을 하면 안 되고, 카드 정보는 받지 못하며, 결제 수단도 못 바꿔요.
규칙을 어기는 AI는 사이트에서 차단됩니다. AI가 엉뚱한 걸 사 와도 반품은 월마트의 일반 절차를 그대로 따르고요.
가격표는 사람 손님과 같은 한 장
셀러 쪽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따로 있습니다. 월마트는 발표문에 "We price products, not people(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상품에 값을 매깁니다)"라고 적었어요.
AI 손님도 월마트닷컴에서 사람이 보는 가격을 그대로 보고, 혜택과 수수료도 결제 전에 똑같이 보인다는 뜻입니다. AI 전용 가격표도, AI 전용 진열대도 따로 없다는 얘기죠.
월마트가 든 쓰임새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늘 사던 사워도우 빵, 늘 마시던 브랜드 우유를 다시 주문하는 일이에요. 그것도 구매 이력을 AI에게 통째로 넘기지 않고요.
AI가 처음 맡는 일이 '새 물건 고르기'보다 '늘 사던 그것 다시 사기'에 가깝다는 겁니다. 손님 장바구니에 한 번 자리 잡은 상품은, 다음 주문을 AI에게 맡겨도 그 자리에 남기 쉬운 구조로 읽힙니다.
다만 거리는 아직 있습니다. 게이트웨이는 기업·개발자용 베타이고, 프랑스 AI 매체 액튀IA는 초대받은 곳만 쓰는 초기 단계라고 전했어요. 프로필도 아직 출시 전이고요.
무엇보다 발표문에는 마켓플레이스 셀러 상품이 이 문으로 나가는지가 한 줄도 없습니다. 거리를 재면 6~12개월짜리 얘기예요. 그사이 할 일은 이 베타가 언제 일반 공개로 넘어가는지 지켜보는 정도죠.
미국 판로를 고를 때 생긴 질문 하나
그래도 한국 셀러에게 이 소식이 가까운 이유가 있습니다. 월마트 미국 마켓플레이스 매출은 최근 분기에 약 52%나 늘었어요.
거기다 코트라가 올해 월마트와 손잡고 한국 뷰티·식품 기업의 마켓플레이스 입점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계정 개설부터 물류, 현지 마케팅까지 단계별로 지원하고, 한 번에 150곳 안팎을 뽑는 방식이에요. 마켓플레이스에서 반응이 좋은 상품은 월마트 매장 입점 후보로도 검토된다고 하죠.
그동안 미국 판로를 고를 땐 수수료와 물류부터 따졌습니다. 이제 질문이 하나 늘었어요. "AI 손님이 결제까지 끝낼 수 있는 곳인가?"
지금 큰 마켓 가운데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쪽은 아마존이 아니라 월마트입니다.
AI 손님 하나만 보고 월마트에 들어갈 이유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월마트에 들어갈 이유가 이미 있었다면, 이번 발표로 하나가 더 붙었어요. 그 문이 넓어지는 날 AI가 집어 갈 건, 사람 손님에게 내건 가격표 그대로니까요.
미국 판로 후보 목록에 월마트를 한 줄 올려 보세요!
— 월마트 문 앞에서 버튼을 꾹 누르다 온 미나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