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매출의 70% 가까이가 세트에서 나왔습니다. 한 병짜리보다 세 병, 다섯 병짜리 묶음이 아마존 빅딜데이 그날 매출을 훨씬 많이 채웠다는 얘기예요.
미국 K뷰티 브랜드 제미(gemi)가 아마존 프라임 빅딜데이(아마존이 가을에 여는 이틀짜리 회원 세일)에서 낸 숫자입니다. 첫날 매출은 평소 아마존 하루 매출의 세 배를 넘었고, 한 번 주문할 때 쓰는 돈(객단가)은 지난 프라임데이들보다 50% 가까이 올랐죠.
할인율은 특별하지 않았어요. 20%였습니다. 그 20%를 세 병·다섯 병 세트에 걸었을 뿐이에요.
정한눈 기자가 미국 쇼핑몰 전체의 할인 깊이를 그림으로 보여드렸는데요. 여기선 그 이틀을 직접 치른 셀러 쪽 이야기입니다.
모던리테일이 브랜드 세 곳의 숫자를 모았는데, 셋의 성적은 얼마나 깊게 깎았느냐보다 어디에 걸었느냐로 갈렸습니다.
한 병 12달러, 세 병 36달러
제미는 에린 최(Erin Choi)와 하우 영(Hau Yeung), 오래 알고 지낸 두 친구가 만든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이름은 한국어 '재미'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파는 건 사실상 하나예요. 손 소독제에 세럼을 섞은 '핸드 새니타이저 + 세럼'이고, 향이 여섯 가지입니다.
자사몰 가격표를 열어보면 웃음이 나는 대목이 있어요. 한 병 12달러, 세 병 트리오 36달러. 한 병 값 곱하기 셋, 정확히 그대로입니다.
산수로는 만점인데, 묶어 사는 손님이 얻는 이득은 0달러였던 셈이죠. 다섯 병짜리 '클래식 컬렉션'만 60달러에서 55달러로 조금 내려 있습니다.
그 세트에 빅딜데이 20%가 붙었습니다. 자사몰 가격표 기준으로 보면, 평소엔 묶어 사도 아낄 게 없던 세트가 이틀 동안은 한 번에 가장 많이 아끼는 장바구니가 된 거예요.
에린 최는 손님들이 할인을 한 가지 향을 사는 데 쓰지 않고, 여러 향을 맛보는 데 썼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연말을 앞둔 "발견과 선물 형태(discovery and gifting formats)에 대한 수요"의 신호로 읽었죠.
하우 영은 한 단어로 정리했습니다. '향 옷장(fragrance wardrobe)'. 손 세정제를 옷 고르듯 그날그날 바꿔 쓰게 하자는 건데, 미국 손님들이 이 말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에요.
포레오 안에서 빅딜데이 매출 1위, 99달러 입문기
할인 깊이만 보면 반대쪽 사례도 있습니다. 뷰티 기기 브랜드 포레오(FOREO)는 세안 기기 루나 4세대에 40%를 걸었거든요.
북미 법인의 에반 펠드스타인 총괄은 매출액은 밝히지 않았어요. 대신 작년보다 16% 늘었다고 했고, 올해 손님이 "유난히 가격에 민감했다(unusually price sensitive)"고 덧붙였습니다.
그 민감한 손님들이 고른 건 정가 99달러짜리 입문형이었습니다. 포레오 상품 중 매출과 판매량 모두 1위가 바로 그 루나 4세대였어요. 199~399달러짜리 상위 라인 '베어'가 아니었죠.
할인율은 두 배 차이인데, 두 브랜드 손님이 찾은 건 같았습니다. 그 브랜드에 싸게 들어오는 입구요. 포레오에선 99달러 입문기가, 제미에선 여섯 향 중 셋을 한 번에 써보는 트리오가 그 입구였습니다.
그런데 제미의 입구는 처음부터 세 병짜리였어요. 손님이 한 번 들어올 때 장바구니가 이미 세 배로 시작한 셈입니다.
세 번째 브랜드는 할인 깊이에 대한 걱정을 덜어줍니다. 포니테일 구멍이 뚫린 운동 모자를 파는 포니플로(PONYFLO)는 대표 캡에 20%를 걸었어요. 민선 유(Minsun Yoo) 창업자는 "목표보다 40% 더 팔렸고, 작년 행사 매출도 넘었다"고 했습니다. 카테고리 전체가 할인에 조심스러웠던 분위기에서요.
아마존 버추얼 번들, 낱개 재고 그대로
미국 아마존에서 파는 한국 셀러라면, 제미식 세트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아마존의 버추얼 프로덕트 번들(Virtual Product Bundles) 기능이에요.
FBA 창고에 이미 들어가 있는 내 상품 2~5개를 상세페이지 하나로 묶어 파는 기능입니다. 실물을 다시 포장해 입고할 필요가 없고, 주문이 들어오면 아마존이 낱개 재고에서 하나씩 꺼내 보냅니다.
스마트스토어에서 옵션에 '3종 세트'를 하나 더 다는 일과 비슷해요.
다만 미국 아마존에서만 되고, 브랜드 레지스트리(아마존 브랜드 등록)가 있어야 합니다. 묶을 상품 전부 FBA에 새 상품 재고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붙고요.
세트 가격은 낱개 가격의 합과 같거나 낮아야 합니다. 낱개 가격을 바꿔도 세트 가격은 자동으로 따라가지 않으니, 세일 전후로 두 번 손보면 돼요.
브랜드 등록이 아직 없다면 실물 세트를 새 상품으로 만들어 다시 입고하는 길이 남습니다. 이 경우엔 블랙프라이데이까지 남은 주수를 거꾸로 세어보는 게 먼저겠죠.
가격표는 제미처럼 짜도 충분합니다. 평소 세트는 한 병 값 곱하기 셋으로 두고, 세일 날에만 그 세트에 할인을 거는 거예요.
블프 가격표를 만지기 전에, 내 상품 중 같이 쓰면 좋은 두세 개부터 한 세트로 묶어보세요!
— 미나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