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아기 방에 둘 가습기를 고르는 손님이 있어요. 먼저 AI 쇼핑 추천부터 받아 봅니다. "아기 방에 둘 만한 미니 가습기 추천해줘." 답으로 세 개가 올라왔죠.
그런데 이 손님은 결제 버튼 대신 쇼핑앱을 열어요. 가열식에 체크, 물통 4리터 이상에 체크, 간편세척에 체크. 추천받은 셋 중 하나는 두 번째 체크에서 화면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제가 지어낸 장면이에요. 다만 이렇게 고르는 손님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는 숫자로 나왔습니다.
AI 쇼핑 추천을 제일 많이 쓰는 손님이 제일 오래 골라요
커머스 광고 회사 크리테오가 올여름 한국을 포함한 6개국 소비자 6,200여 명에게 물었어요. 지난 호에 한눈 인턴이 이 보고서 앞쪽의 매출 숫자를 풀었는데요, 저는 뒤쪽 설문 장을 폈습니다.
가전·전자제품을 살 때 AI 챗봇을 쓰느냐는 질문에, 한국 손님의 53%가 "적어도 일부 구매에서는 쓴다"고 답했어요. 6개국 평균 48%를 넘고, 독일과 함께 공동 1위예요.
품목끼리 견줘도 가전이 맨 위였죠. 한국 응답에서 패션, 뷰티, 식품·생필품은 모두 가전보다 아래였거든요.
AI가 대신 찾아 주니 결정도 빨라졌을 것 같잖아요. 결과는 반대였어요. 온라인에서 처음 찾아본 그날 결제까지 끝낸 한국 손님은 5%뿐이고, 2주 넘게 걸린다는 손님이 46%였습니다.
AI를 가장 많이 쓰는 품목이 고르는 데 가장 오래 걸리는 품목이기도 한 거예요. 저도 지난겨울 가습기 하나를 3주 골랐는데, 그 46% 안에 제가 있었네요.
AI는 계산대가 아니라 물어보는 자리에 있어요
크리테오가 올해 초에 한 다른 설문을 보면 이유가 짐작돼요. 상품을 견주거나 새 물건을 찾을 때는 AI를 쓰지만, 주문까지 맡긴다는 사람은 8%뿐이었거든요.
이번 가전 조사에서도 같은 모습이 보여요. AI를 쓰는 한국 손님 가운데 "AI가 추천한 상품이 내 결정에 영향을 준다"고 답한 사람은 58%였는데요. 6개국 중 일본 다음으로 낮은 숫자예요.
가전을 어떤 방식으로 고르고 싶으냐는 질문엔 답이 더 또렷했어요. "전부 보여 주면 내가 훑어보고 직접 거르겠다"가 41%로 가장 많았습니다. 취향 맞춤 추천은 28%, 전문가가 추려 준 몇 개는 23%였죠.
"아무래도 좋다"는 8%. 6개국 중 가장 적어요. 한국 손님은 고르는 방식에도 주관이 뚜렷한 편이에요.
다만 이 41%는 AI 추천을 받은 사람을 따라가며 잰 숫자가 아니에요. 평소 좋아하는 쇼핑 방식을 물은 문항이죠. 두 문항을 이어서 읽은 사람은 크리테오 코리아 김도윤 대표예요. 손님들이 "AI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최종 선택을 직접 내리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올봄 이 회사가 한국에 낸 보도자료 제목은 "AI가 쇼핑 대신한다"였어요. 반년 만에 문장의 주어가 손님으로 돌아온 셈이죠.
손님이 직접 거르는 화면엔 감성 문구가 못 들어가요
그럼 "직접 거른다"는 화면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에서 가습기를 검색하고 필터를 펼쳐 봤어요.
가습방식은 초음파식·가열식·복합식·자연기화식 넷. 수조용량은 0.9L 이하부터 8L 이상까지 여섯 단계, 최대분무량도 150cc 이하부터 601cc 이상까지 여섯 단계예요. 그 밑으로 세척관리와 편의기능이 이어집니다.
전부 방식 이름 아니면 숫자예요. "촉촉한 겨울을 선물하세요"를 넣을 체크박스는 어디에도 없어요.
필터에서 일하는 건 상품을 등록할 때 넣은 속성값입니다. 그리고 필터를 통과한 다음엔 상세페이지에 적힌 제품 사양(스펙) 숫자가 일해요.
한국 가전 손님의 37%는 사기 전에 네 군데 이상을 확인하거든요. 한 군데만 보고 사는 사람은 9%뿐이에요. 네 군데를 도는 손님에게 "넉넉한 대용량"은 옆 가게와 견줄 수가 없는 말이죠. "수조 4L"는 견줄 수 있고요.
크리테오가 보고서 끝에 적은 권고도 같은 방향이에요. "스펙 하나하나가 일하게 하라." 여기에 손님이 고를 범위를 너무 빨리 좁혀 주지 말라는 당부가 붙어 있어요.
사양 표를 이미지 안에만 그려 두셨다면 글자로 한 번 더 적어 두는 편이 좋아요. 통이미지 상세페이지가 AI 검색에서 안 읽히는 이유와 같은 문제가 여기서도 생기거든요.
AI 추천 순위보다 내 상품의 체크 개수가 먼저예요
AI 추천 목록에 내 상품이 오를지는 가게에서 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손님이 누르는 필터에서 내 상품이 몇 번째 체크까지 남는지는 오늘 5분이면 확인됩니다.
파는 플랫폼에서 내 상품 종류를 검색하고, 필터를 내 상품 사양대로 하나씩 켜 보는 거예요. 분명 4리터짜리인데 '4L 이상'을 켜자 내 상품이 사라진다면, 등록 화면의 그 속성이 비어 있을 가능성이 커요. 스마트스토어는 '상품속성', 쿠팡은 '검색옵션'에서 채웁니다.
앞에서 본 설문 숫자를 읽을 때 조심할 점도 있어요. 가전 조사고, 광고 회사가 낸 설문이에요. 한국 응답자가 몇 명인지는 공개된 자료에 없습니다. 옷이나 식품에 숫자를 그대로 옮기긴 어려워요.
그래도 용량·크기·함량·소재처럼 손님이 숫자와 종류로 거르는 물건이라면 사정은 비슷할 거예요.
같은 보고서에 실린 크리테오 거래 데이터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국내 가습기 온라인 매출이 10월 평소보다 가장 크게 뛴 날은 11월 3일이었어요. 2주 넘게 고르는 손님이 절반 가까이니, 그날 결제할 손님은 지금쯤 필터를 누르고 있겠죠.
AI 추천 순위를 걱정하는 시간보다 속성 하나 채우는 시간이 그 손님에게 먼저 닿아요. 세 번째 체크를 눌렀을 때도 화면에 남아 있는 상품, 오늘 만들 수 있습니다!
— 올겨울엔 가습기를 3주 말고 사흘 만에 고르고 싶은 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