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 미팅 이틀 전, 한글로 만든 카탈로그 PDF 12쪽을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밤이에요. 본문 글자를 복사해 번역기에 넣는 건 1분이면 끝나죠.
막히는 건 사진 위에 얹힌 글자예요. 쿠션 사진 옆 '세탁기 OK' 말풍선, 표지의 '신상' 배지, 맨 뒤 사이즈표까지 전부 그림의 일부라서 복사조차 안 되거든요.
그래서 이 일은 늘 디자이너 몫이었습니다. 크몽에서 중국어 상세페이지를 한국어로 바꿔 주는 상품만 봐도 세로 길이로 값을 매겨요. 5,000px 이하 15,000원, 18,000px 이하 35,000원, 수정은 2회, 받기까지 5~7일이고요.
번역값이라기보다 글자를 지우고 다시 앉히는 손값이죠. 그 손값을 겨냥한 도구가 프로덕트 헌트(새로 나온 서비스를 매일 줄 세우는 사이트)에 올라왔어요. 이름은 픽스레이트(PixLate)입니다.
아빠의 잠자리 동화에서 나온 번역기
만든 사람은 크리슈나 타파. 개발부터 고객 응대까지 혼자 이끄는 1인 창업자예요.
시작은 아이에게 그림 동화를 네팔어로 읽어 주고 싶은 마음이었대요. 종이책은 구하기 어려웠고, 디지털 페이지를 번역기에 돌린 결과는 이랬다고 적었어요. "레이아웃이 완전히 망가지고, 그림을 덮어 버려서 읽을 수가 없었다."
잠자리 동화 숙제가 제품이 된 셈이죠. 지금 공식 사이트엔 동화책·만화 옆에 광고·메뉴·포장재, 제품 설명서가 나란히 올라 있어요. 설명서 페이지엔 모든 페이지를 "디자인팀에 먼저 넘기지 않고" 현지 언어판을 준비하라는 문장도 있고요.
받는 파일은 PDF, JPG, PNG, WebP예요. 통이미지로 저장해 둔 상세페이지도 그대로 넣을 수 있다는 뜻이죠. 지원 언어 100개가 넘는 목록에 한국어가 들어 있고, 결과는 PDF나 이미지로 내려받습니다.
디자인 그대로 이미지 번역, 고칠 땐 그 한 줄만
"그냥 챗GPT에 시키면 안 돼요?" 회사가 이 질문을 자주 묻는 질문 목록에 직접 올려 뒀어요. 채팅은 빠른 실험엔 좋지만, 그림을 고쳐 가며 반복하면 비용이 금방 불어난다는 답이었죠.
문제는 거의 맞았는데 한 군데 틀렸을 때예요. 페이지를 통째로 다시 그리다 쿠션 무늬까지 바뀌면 곤란하잖아요.
픽스레이트는 고칠 곳만 고치게 만들었어요. 공식 문구로는 "말풍선 하나만 고치고, 나머지 페이지는 그대로". 카탈로그에 대 보면 쓸모가 세 가지예요.
- 지우면 안 되는 곳은 가려 둬요. 마스크(번역에서 빼고 싶은 영역 표시) 사용법 영상의 첫 예시가 QR코드였어요. 브랜드 로고나 이미 영어인 상품명도 같은 식으로 원본 그대로 둘 수 있죠.
- 상품명이 페이지마다 흔들리지 않아요. 이어진 페이지끼리 맥락을 나눠 이름과 말투를 유지한대요. 3쪽에선 'Mochi Cushion'이던 게 9쪽에서 'Rice Cake Pillow'가 되는 일을 막는 장치예요.
- 한 장을 기준으로 나머지를 맞춰요. 마음에 드는 페이지 하나를 손봐 기준으로 꽂아 두면, 나머지가 그 스타일을 따라간다고 해요.
무료 다섯 장, 그다음은 페이지마다 다른 값
가입하면 번역 5장과 정리(흐린 스캔 보정) 5장을 줘요. 카드 등록도 필요 없습니다.
그 뒤로는 구독 없이 크레딧을 사서 쓰는 방식이에요. 금액을 직접 정해 충전하면 5달러부터고, 크게 충전할수록 달러당 크레딧이 늘어난대요.
다만 장당 값은 공개돼 있지 않아요. 깨끗한 페이지는 싸고, 글자가 빽빽하거나 배치가 복잡한 페이지는 비싸다는 설명만 있죠.
아끼는 길은 두 개예요. 마우스로 글자를 긁어 복사할 수 있는 PDF라면 '텍스트 레이어' 모드가 더 싸고, 번역문도 고칠 수 있는 글자로 남아요. 급하지 않은 날엔 백그라운드로 맡겨 두고 나중에 받는 쪽이 더 저렴하고요.
아직 아무도 대신 확인해 주지 않은 것
목록에 한국어가 있는 것과, 한글 카탈로그가 매끄러운 영어로 앉는 건 다른 얘기예요. 출시 페이지에 달린 댓글 세 개에도 한국어로 써 본 사례는 없었어요.
글자 길이도 변수예요. 출시 페이지에서 한 사용자가 물었죠. 독일어는 영어보다 30%쯤 긴데 말풍선에 안 들어가면 어떡하냐고요.
창업자 답은 "말풍선에 맞추는 것과 읽기 쉬운 글씨 사이엔 맞바꿈이 있다"였어요. 글씨를 줄이거나 같은 뜻을 짧게 다시 쓰라는 거죠. 한글 '무료배송' 네 글자 자리에 'Free Shipping' 열세 자가 들어가야 하니, 영어 문장들은 다이어트 좀 하셔야겠어요.
파일 위치도 하나 알아 두면 좋아요. 프로젝트는 기본으로 내 컴퓨터에 남지만, AI 처리를 돌리는 페이지 이미지는 서버로 갑니다. 아직 공개 전인 신상 카탈로그라면 이미 공개한 페이지부터 넣는 편이 마음 편하죠.
성분·인증·주의 문구는 사람이 봐요. 회사도 설명서 페이지에 경고·규제 문구는 자격 있는 사람이 검토해야 한다고 적어 뒀어요. 창업자도 이 도구의 핵심을 "검토와 사람 손 수정"이라고 못 박았고요.
다섯 장 중 첫 장은 사이즈표로
무료 다섯 장은 표지부터 넣고 싶어지죠. 그런데 표지는 글자가 크고 적어서 웬만하면 잘 나와요.
진짜 시험지는 맨 뒤 사이즈표나 성분표예요. 작은 글씨가 빽빽해서, 회사가 값이 더 든다고 말한 바로 그 페이지거든요.
거기서 숫자 하나 안 빠지고 표가 반듯하게 남으면, 나머지 열한 쪽은 틀린 줄만 골라 고치는 일이 돼요. 디자이너 견적 메일은 그다음에 써도 늦지 않습니다.
미팅 전날 밤, 영어로 갈아입은 사이즈표 한 장이 노트북에 떠 있으면 꽤 든든할 거예요!
— '무료배송'을 영어로 몇 글자에 넣을지 손가락으로 세어 본 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