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동네 소품숍에서 첫 발주 메일이 와요. 행주 마흔 장에 파우치 스무 개.
메일 맨 끝에 한 줄이 붙어 있어요. "결제는 다음 달 말에 해도 될까요?"
답장 창에 '네'를 썼다 지웠다 해요. 거절하면 첫 가게를 놓칠 것 같고, 들어주면 한 달 동안 물건값을 빌려주는 셈이니까요.
도매 외상 결제 조건은 이렇게 첫 거래처 앞에서 제일 어렵죠. 미국 미시간에서 농담 적힌 행주를 찍는 작은 브랜드 하나는 여기에 꽤 깔끔한 답을 걸어 뒀어요.
레딧에 올라온 질문과 2분 뒤의 답
해외 이커머스 커뮤니티 레딧 r/ecommerce에 똑같은 고민이 올라왔어요. 제목은 "새 도매 거래처에 30일 후결제를 주나요, 선결제를 받나요?"
글쓴이의 걱정은 꽤 구체적이었는데요. 첫 주문에 30일을 주면, 물건부터 보내 놓고 한 달 뒤에야 돈이 들어올지 알게 된다는 거죠. 계좌이체가 '완료'로 떠도 며칠 뒤 되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붙였고요.
2분 만에 첫 댓글이 달렸어요. "첫 주문은 선결제. 언제나요."
이 운영자가 썼다는 방식은 사다리 모양이에요. 첫 두 주문은 100% 먼저 받아요. 금액이 커서 상대가 겁을 먹으면 50% 계약금으로 낮춰 주고요.
두 번 제때 들어오면 15일 후결제를 열어요. 그 뒤 90일 동안 입금이 깨끗하면 그때 30일이에요.
다른 거래처의 추천서는 참고만 했대요. "절반은 바이어 사촌이더라고요." 진짜 거름망은 처음 입금된 주문 한 건이었다고요.
"첫 주문에 주는 30일은 결제 조건이 아니에요. 모르는 사람한테 담보 없이 해 주는 대출이에요."
이 말을 바이어한테 그대로 했더니 대부분 알아듣더래요. 마지막엔 이렇게 정리했어요. 외상은 결제 이력에 주는 보상이지, 환영 선물이 아니라고요.
다만 댓글 단 사람들은 다 익명이라, 어느 회사 얘긴지는 확인할 길이 없죠. 그런데 이 사다리를 진짜 약관으로 홈페이지에 걸어 둔 브랜드가 있어요.
해고 통지와 엄마네 지하실
엘렘비(ellembee)를 만든 리사 와일리 얘기예요. 2008년 1월, 그는 남캘리포니아에서 침구 디자이너로 일하다 해고됐어요.
짐을 싸서 고향 미시간으로 돌아갔고, 한 달 뒤 회사를 차렸어요. 이름은 자기 이니셜 L-M-B를 소리 나는 대로 쓴 거예요. 첫 작업실은 엄마네 지하실이었고, 거기서 5년을 버텼어요.
돈은 처음부터 빠듯했죠. 실크스크린 경험이라곤 대학 과제 한 번이 전부였고요.
"인쇄기 살 돈이 없어서, 아빠랑 합판이랑 경첩으로 장치를 짜 맞췄어요."
교재는 도서관에서 빌린 1970년대 실크스크린 책과 유튜브 영상이었어요. 망친 셔츠는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많다"고 했죠. 창업 4년 차 동네 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인데, 끝에 "(지금도요!)"를 붙였어요.
2020년엔 바닥을 한 번 더 찍었는데요. 행주와 다른 상품이 예전처럼 안 팔리자, 웃긴 문구 마스크와 손 소독제, 격리 생활용 색칠 공부 책까지 만들었어요.
"2020년은 정말 험했어요. 제가 아는 거의 모든 작은 가게가 그랬듯이요."
합판으로 인쇄기를 짜던 회사한테 30일 외상은, 행주 마흔 장 값을 한 달 동안 남한테 맡겨 두는 일이죠.
농담 한 줄 행주와 4,000곳의 가게
전환점은 2014년에 왔어요. 리사 말로는 "그냥 충동적으로" 웃긴 문구를 넣은 부엌 행주를 만들었는데, 그게 회사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물건이 됐어요.
그 뒤로 옷은 아예 접고 농담 선물만 만들어요. 행주 한 장 값은 13달러(약 1만 7천 원)예요. 문구는 대충 이런 결이에요.
"생마늘 다루는 거 너무 싫어요. 한 쪽 한 쪽마다 서류 작업이 따로 있어서."
이 행주들이 동네 선물 가게로 퍼졌어요. 2022년 인터뷰에선 미국·캐나다·유럽 3,000곳 넘는 가게였는데, 지금 회사 소개엔 4,000곳 넘게 적혀 있어요. 56평 남짓하던 창고도 약 390평짜리로 커졌죠.
가게가 늘수록 받아야 할 돈도 여기저기 흩어져요. 수천 곳과 거래하는 작은 브랜드라면, 결제 조건 한 줄이 한 달 버틸 현금을 정하거든요.
문 두 개짜리 도매 페이지
엘렘비 홈페이지의 도매 페이지를 열면 맨 위에 페어(Faire) 주문 창이 떠 있어요. 페어는 작은 브랜드와 동네 가게를 잇는 미국 도매 장터예요.
여기엔 중요한 장치가 하나 숨어 있는데요. 가게는 페어 심사를 통과하면 물건값을 60일 뒤에 낼 수 있어요. 그런데 브랜드가 돈 받는 날은 가게의 결제 상태와 상관없어요. 브랜드는 계정에 따라 다음 날(수수료 3%), 30일 뒤, 60일 뒤 중에 골라서 정산받고요.
외상을 원하는 새 가게한테 리사가 "안 돼요"라고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60일은 페어가 대신 서 주니까요.
그 아래 한 줄이 두 번째 문이에요. "직접 주문하고 싶으면 메일 주세요!"
직접 거래의 외상 규칙은 올여름 새로 생긴 약관 페이지에 적혀 있어요.
- 30일 후결제는 요청할 때만, 그것도 첫 주문을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에만 열어요.
- 그 카드는 연체에 대비해 보관해요.
- 기한을 넘기면 매달 청구액의 2%가 붙어요.
- 90일을 넘기면 보관한 카드로 원금과 이자를 결제해요.
레딧 댓글의 사다리와 뼈대가 같아요. 첫 입금을 먼저 보고, 외상은 그다음이에요. 그리고 약관 마지막 문장은 의외로 다정해요.
"저희의 가장 큰 목표는 원래 청구 금액을 받고, 손님과 좋은 관계를 지키는 거예요."
리사가 왜 이 약관을 새로 걸었는지는 밝힌 적이 없어요. 이 규칙 덕분에 4,000곳이 됐다고 말할 근거도 없고요. 다만 4,000곳 넘는 가게와 거래하는 지금, 이 브랜드가 내건 규칙은 이거예요. 첫 가게를 밀어내지 않으면서 돈은 지키는 쪽으로요.
첫 납품 견적서 맨 아래 세 줄
우리 쪽으로 옮기면, 편집숍 첫 입고 때 "월말 마감하고 다음 달 말에 입금할게요"라는 말을 듣는 장면이에요. 이름 있는 가게일수록 거절하기 더 어렵죠.
엘렘비가 보여준 원리는 두 가지예요. 외상은 입금 기록이 쌓인 가게에만 열어요. 이름이 큰 편집숍이라도 순서는 같고요. 그리고 내가 외상을 못 서 줄 땐, 대신 서 줄 쪽을 붙여요.
두 번째가 의외로 쉬운 쪽이에요. 가게가 사업자 카드로 결제하면, 가게는 카드값 나가는 날까지 숨을 돌리고 우리는 카드사 정산으로 물건값을 받아요. 외상은 카드사가 서는 셈이죠. 대신 카드 수수료는 우리가 내요.
그래서 첫 견적서 맨 아래에 이런 세 줄을 붙여 보면 어떨까요.
- 첫 주문 결제는 카드나 선입금이에요. 금액이 크면 절반 계약금도 괜찮아요.
- 두 번 제때 입금되면 15일 후결제, 석 달 깨끗하면 30일로 늘려요.
- 기한을 넘기면 어떻게 되는지 미리 적어 둬요.
이 세 줄은 '언제 외상이 열리는지' 미리 알려 주는 안내문이에요. 레딧 운영자가 바이어한테 이유부터 말했던 것처럼요.
이번 첫 발주 메일엔 '네' 대신 이 세 줄을 붙여서 보내 보세요!
마늘 서류 작업 문구에 한참 웃다가 견적서 양식부터 고친, 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