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신상품 기획안을 붙들고 있는데 리뷰 알림이 떠요. "캠핑 갈 때 들고 갔는데 비 맞아도 멀쩡했어요."
분명 피크닉 가방으로 올린 상품인데 말이죠. 고맙다는 답글 하나 달고 기획안으로 돌아가기 딱 좋은 순간입니다.
미국 뉴저지의 킴 바카렐라는 이런 한 줄을 그냥 넘기지 않았어요. 고무 가방 브랜드 보그(Bogg)의 창업자죠. 해변용으로 만든 가방 하나를, 손님이 들고 간 곳을 따라 18년째 키워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 그 목록에 출근길이 올라갔어요. 지퍼 달린 새 가방 '고 토트(Go Tote)'예요.
옷장 속 해변 가방 무덤
2008년, 바카렐라는 아들 둘을 데리고 저지 쇼어 바닷가를 자주 다녔어요. 밀짚 가방은 모래와 물기에 금방 상했고, 캔버스 가방은 금방 꼬질꼬질해졌죠. 옷장은 버린 해변 가방 무덤이 돼 갔고요.
"하루 끝에 호스로 쓱 씻어서 걸어두면 끝나는, 그런 큰 가방을 원했어요."
크록스 같은 고무 소재(EVA 폼)로 만들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런 가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이에 직접 그렸대요. 구멍 뚫린 네모에 손잡이 두 개. 본인 말로는 "그림 실력은 0"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그는 16년 차 상업용 부동산 직원이었어요. 제조는 해본 적도 없었죠. 원래 계획은 아이디어만 다듬어 큰 회사에 5,000만 달러쯤에 파는 거였대요. 본인도 "그땐 다 모노폴리 돈이었죠" 하고 웃어요. 우리 식으로 치면 부루마불 지폐입니다.
샛노란 가방에 번진 까만 줄
특허를 받고 중국 공장을 찾는 데만 몇 년이 걸렸어요. 2010년에 시제품을 받았고, 첫 주문은 300개였죠. 뉴저지 동네 가게 한 곳이 쨍한 핑크색 가방을 받아줬습니다.
값은 60달러. 도매가가 뭔지도 몰라서 "대충 감으로" 정했대요. 원가에 두 배, 거기서 또 두 배.
300개가 다 팔리자 그는 크게 걸었어요. 2012년, 아이들 대학 학자금 통장에서 3만 달러(약 4,000만 원)를 꺼내 1,200개짜리 컨테이너를 주문했죠. 대학을 못 나온 부부가 아이들만큼은 보내려고 모아둔 돈이었습니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컨테이너가 집 앞에 도착했어요. 상자를 열자, 샛노래야 할 가방에 까만 줄이 죽죽 번져 있었죠.
"심장이 내려앉았어요. 고칠 방법이 없었거든요."
팔 물건도, 새로 찍을 돈도 남지 않았습니다. 보그 가방이 다시 팔리기까지는 그 뒤로 4년이 걸려요.
장갑, 고글, 쓰레기봉투
불량 가방이 도착하고 얼마 안 돼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북동부를 덮쳤어요. 바카렐라 부부는 팔 수 없게 된 그 가방에 구호품을 담아 동네에 나눠줬죠. 어디서 나눠주는지 알리려고 페이스북 페이지도 하나 열었고요.
집으로 돌아온 이웃들은 그 가방에 장갑과 고글, 쓰레기봉투를 담아 날랐습니다. 해변용으로 그린 가방이 처음 제 몫을 한 곳은 바닷가가 아니라, 폭풍이 쓸고 간 골목이었던 거예요.
그러자 페이스북으로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 그리고 "이 가방 어디서 더 살 수 있어요?"
"그 암울하던 시기에 유일하게 반짝였던 순간이었어요."
다시 시작하는 일도 처음만큼 무서웠다고 합니다. 새 공장을 찾고, 가족끼리 알던 지인에게 12만 달러를 투자받아 빚부터 갚았죠. 주문을 다시 받은 건 2016년입니다.
퇴근하면 남편과 아들, 학교 끝나고 달려온 첫 직원이 같이 상자에 테이프를 감았어요. 2018년 매출이 100만 달러를 넘자, 그는 26년 다닌 부동산 일을 그만뒀습니다.
교실, 병동, 그리고 접힌 캔버스 배낭
코로나 때 이 가방은 또 다른 곳으로 갔어요. 교사와 간호사들이 집과 일터를 오가며 들기 시작한 거죠. 쓱 닦이고, 균이 덜 붙는 소재라서요.
"쓰임새가 이렇게 많은 줄, 그때 알았어요."
보그는 그 쓰임새를 그대로 받아 적었죠. 할인을 거의 안 하는 브랜드인데도 교사·간호사를 위한 캠페인은 따로 열었어요. 2019년 400만 달러였던 매출은 2023년 5,400만 달러가 됐고, 누적 매출은 지금 4억 달러(약 5,360억 원)를 넘겼습니다.
물론 매번 맞힌 건 아니에요. 몇 년 전엔 캔버스로 배낭과 토트백을 냈는데, 바카렐라가 원하던 튼튼함이 안 나왔대요. 결국 처음부터 다시 그리기로 했죠. 들고 갈 곳을 늘리려다, 정작 손님이 이 가방을 고른 이유를 놓친 셈이었습니다.
지퍼 하나, 단어 하나
이번엔 다시 손님한테 물었어요. 설문을 돌리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다음 가방으로 뭘 원하는지 물었죠. 답은 위가 잠기는 가방이었습니다. 해변에선 괜찮던 뻥 뚫린 입구가, 좀 더 안심되는 가방을 찾는 사람에겐 걸렸던 거예요.
그래서 나온 고 토트는 위쪽을 부드러운 소재로 바꾸고 지퍼와 크로스 끈, 노트북 주머니를 달았어요. 바닥은 그대로 EVA 고무죠. 캔버스 때 배운 걸 바닥에 남긴 거예요. 크기는 셋, 값은 90·120·150달러(약 12만·16만·20만 원)입니다.
제일 큰 35리터는 여행 가방 손잡이에 끼워지고, 바닥 칸이 지퍼로 따로 잠겨요. "더러운 신발, 진흙 묻은 축구화, 뭐든 넣고 다 쓰면 닦아내면 돼요." 해변 모래 대신 퇴근길 운동화가 들어갈 자리인 거죠.
단어도 하나로 맞췄습니다. 챗GPT 같은 AI가 이 가방을 출근 가방으로 알아듣도록, 상품 설명부터 고치는 중이래요. "출근 가방이라고 했으면, 모든 곳에 '출근'이라고 써 있어야 해요."
이달엔 고 토트를 든 홍보 요원 75명을 뉴욕 그랜드센트럴역에 풀었어요. 출근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지나가는 곳에 가방을 세운 거죠.
길이 순탄하진 않았습니다. 작년 관세로 1,000만 달러 가까이 맞았고, 생산지를 베트남·캄보디아로 옮기느라 9월 출시가 10월로 밀렸습니다. 그래도 값은 안 올렸대요. "이제 좀 숨 돌리나 싶으면, 또 안 되더라고요."
고 토트의 성적표는 아직입니다. 이제 막 역 앞에서 첫 장을 넘겼으니까요.
우리 문의함에 먼저 와 있는 신상품 기획안
보그가 18년 동안 한 일은 한 줄로 줄일 수 있죠. 손님이 가방을 들고 간 곳을 받아 적고, 다음 걸음을 그 장소로 옮긴 거예요. 폭풍 청소, 교실, 병동, 이번엔 출근길.
여기엔 조건이 하나 붙어요. 장소는 계속 바뀌었는데, 쓱 닦이는 고무 바닥은 한 번도 안 바뀌었다는 거죠. 캔버스 배낭이 접힌 것도 그 튼튼한 고무를 내려놔서였고요.
내 스마트스토어로 치면 문의와 리뷰 속 "~갈 때", "~에서 쓰려고"가 그 장소죠. "어린이집 낮잠 이불로 샀어요", "차박할 때 깔아요" 같은 말이요. 상세페이지엔 한 번도 안 적은 쓰임새라면, 거기가 다음 상품이 설 자리일 수 있습니다.
보그는 그 첫 한 줄을 14년 전 페이스북 메시지로 받았습니다. 우리 문의함에도 벌써 와 있을지 몰라요. 이번 주엔 '갈 때'로 끝나는 문장부터 한번 찾아보세요!
P.S. 이 글 쓰다가 제 에코백을 처음 빨았습니다. 호스가 없어서 세탁기로요. — 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