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조카가 놀러 와서 냉장고를 열어요. 우리 가게에서 10년째 제일 잘 팔리는 음료를 꺼내 뒷면을 한참 보더니 묻죠. "근데 이거 무슨 맛이에요?"
단골은 눈 감고도 아는 맛인데, 다음 세대한텐 처음 보는 병인 거죠. 미국 무설탕 물 브랜드 힌트(Hint)가 딱 이 처지였어요.
이 회사가 이번에 꺼낸 답은 무설탕 음료 한정판이에요. 설탕·감미료·칼로리가 전부 0인 물에 '키라임 파이', '딸기 컵케이크', '베리 코블러', '파인애플 휩'이라는 디저트 이름을 붙였죠. 최근 몇 주 사이 자사몰 대기자만 8,000명이 넘게 쌓였대요.
언뜻 보면 "설탕 싫다던 브랜드가 결국 단맛에 졌네" 싶어요. 그런데 공식몰을 열어 보면 본품 자리는 그대로입니다. 디저트 이름은 새 손님을 위한 한정판 팩에만 붙었거든요.
설탕을 싫어해서 시작한 회사였어요
창업자 카라 골딘은 AOL에서 전자상거래를 이끌던 임원이었어요. 그 시절 다이어트 콜라를 하루 최대 10캔씩 마셨대요. 늘 피곤했고, 살이 붙고, 여드름이 났죠.
"저 꽤 똑똑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다이어트'라는 단어에 속아서 그게 몸에 더 좋다고 믿었어요." BBC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에요.
콜라를 끊고 맹물을 마시려니 이번엔 너무 밍밍했죠. 그래서 물병에 딸기와 라즈베리 조각을 넣어 냉장고에 넣어 뒀어요. 가게에서 같은 걸 찾아봤는데, 설탕도 감미료도 없는 과일 물은 어디에도 없더라고요.
2005년, 샌프란시스코 집 부엌에서 힌트가 시작됐어요. 첫 판매처는 동네 홀푸드였는데요. 골딘은 넷째 아이를 낳기 몇 시간 전에 몇 상자를 매장에 두고 왔고, 그 병들은 하룻밤 새 다 팔렸대요.
창업 반년쯤 됐을 때 장면이 하나 더 있어요. 지인 소개로 코카콜라 임원과 통화할 기회가 생겼거든요. 사업을 키울 도움을 기대하며 설명하던 중에 상대가 말을 끊었습니다.
"Sweetie, Americans love sweet(아가씨, 미국인은 단 걸 좋아해요)."
골딘은 오히려 이 말에 불이 붙었다고 해요. "탄산음료 회사들은 그냥 우리가 감미료에 중독되길 바라는 거예요." CNBC에 남긴 그의 말이죠.
스타벅스 냉장고에서 블랙베리 수백 상자가 빠졌어요
2014년, 스타벅스 매장 냉장고에서 힌트가 빠지면서 블랙베리맛 수백 상자가 창고에 남았습니다. 그 상자들이 서로 눈치만 보던 며칠 뒤, 식음료 판매를 막 시작한 아마존이 전화를 걸어왔죠.
힌트는 금세 아마존 인기 음료가 됐고, 같은 해 자사몰도 열었어요. 골딘은 자사몰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26가지가 넘는 맛을 다 보여줄 수 있고, 새 상품을 시험해 볼 수도 있어요."
젊은 손님한테 힌트는 처음 보는 물이었어요
시간이 흘러 골딘은 2021년 CEO 자리에서 내려왔고, 2024년 말 마이크 펭그가 새 CEO로 왔습니다. 연 소매 매출 약 2억 5천만 달러(약 3,350억 원), 미국 무가당 과일향 물 1위 브랜드였죠.
그런데 멈춰 있는 숫자가 있었어요. 힌트를 사는 가구 비율이 제자리걸음이었거든요. 젊은 손님한테는 아예 닿지 못하고 있었고요. 펭그는 모던리테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제 아이 셋이 다 20대인데요, 제가 이 회사에 오기 전까지 힌트를 한 번도 안 마셔봤어요."
펭그가 짚은 원인은 말하는 방식이었는데요. "예전 광고는 힌트에 뭐가 안 들었는지만 말했어요. 의미는 있지만, 힌트가 뭔지는 전하지 못했죠." '설탕 0'은 단골에겐 사는 이유였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겐 맛 설명이 아니었던 셈이에요.
그래서 작게 시험부터 했죠. 작년 여름 내놓은 '스타 스팽글드' 팩이에요. 오렌지 바닐라 스월, 레인보우 셔벗 아이스팝처럼 아이스크림 이름을 단 네 가지 맛을 12병 한 상자에 담았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월마트 온라인몰에서 힌트 상품 중 판매 1위에 올랐죠. 여름 한정이던 이 팩은 1년 내내 팔기로 했대요.
디저트 이름은 새 팩에만, 정기배송 상자는 그대로예요
이번 '트리트 유어셀프' 팩은 그 시험의 다음 단계입니다. 16온스(약 473ml) 12병에 22.99달러(약 3만 원)로, 기존 클래식 팩과 값이 같아요. 공식몰과 아마존, 일부 월마트 매장에서 팔고 새해엔 매장을 더 늘린다고 합니다.
힌트 마케팅 책임자 앨리슨 컬먼은 이 한정판을 젊은 손님을 데려오는 "모집 수단(recruitment vehicle)"이라고 불렀죠. 가을에 내놓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미는 건 새해 결심 시즌이에요.
본품 쪽을 보면 이 말이 더 또렷해집니다. 공식몰 10월 정기배송 묶음엔 디저트맛이 하나도 없어요. 수박, 딸기 키위, 과일 두 가지를 섞은 스매시업 팩이 들어가죠. 클래식 팩 설명엔 "포장은 새로 바뀌었지만 좋아하던 맛은 그대로 들어 있다"는 안내까지 붙어 있고요.
이렇게 나눈 이유는 컬먼이 말한 숫자 하나에 있어요. 힌트 손님은 평균 여섯 가지가 넘는 맛을 마신대요. 한 번 들어온 손님은 알아서 다른 맛으로 옮겨 다닌다는 뜻이죠. 처음엔 '키라임 파이'로 웃으며 들어와도, 다음 주문은 수박과 블랙베리가 받아 주면 되는 거예요.
업계 해석도 비슷합니다. 미국 스페셜티푸드협회 식품 동향 분석가 존 레인은 "그냥 베리 맛은 지금 손님한테 좀 밋밋하게 느껴진다"고 했어요. 그래서 힌트는 과일 맛은 정기배송 상자에 그대로 두고, 처음 건네는 이름만 디저트로 바꿔 단 거죠.
스마트스토어로 옮기면 이런 모양이겠죠. 대표 상품 상세페이지와 정기구매 링크는 손대지 않아요. 대신 처음 오는 손님이 알아들을 이름을 단 '한정 세트'를 별도 상품으로 하나 올리죠. 값은 본품과 같게 두고요.
20년 전 그 임원의 말은 절반만 맞았어요
"미국인은 단 걸 좋아해요." 그 코카콜라 임원의 말은 절반만 맞았습니다. 힌트는 21년째 설탕을 한 톨도 넣지 않았는데, 손님들은 지금도 평균 여섯 가지 넘는 맛을 돌아가며 마시고 있거든요.
바꾼 건 처음 온 손님에게 건네는 이름 하나와, 그 이름을 담은 상자 하나뿐이에요.
우리 가게 본품은 그대로 두고, 처음 오는 손님이 웃으며 집어 들 이름 하나부터 찾아보세요!
취재·글 박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