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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70배 뛴 브랜드, 팔린 건 파우치가 아니었다

한이룸 · 2026.10.23 · 읽는 시간 5분

대만 쿠팡에 들어간 한국 브랜드 '브랜든'의 대만 매출이 1년 만에 70배가 됐어요.
여행 짐을 반으로 줄여 주는 압축 파우치로 유명한 곳이죠. 그런데 대만 손님이 제일 많이 산 건 그 파우치가 아니었어요.

지난 #88에서 '박스만 물류센터에 보내면 대만에서 팔 수 있다'는 가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그 뒤로 판이 더 커졌습니다. 대만 쿠팡 앱 이용자는 시밀러웹 집계로 한 달 1,190만 명까지 늘었고, 쿠팡을 통해 대만에 물건을 파는 한국 중소기업은 1만여 곳이에요.

쿠팡이 대만 통관부터 배송까지 대신 맡는 구조라, 1만 곳이 같은 로켓배송 트럭을 타요. 그런데 누구는 70배, 누구는 제자리걸음이죠.
트럭이 같다면 차이는 박스 안에서 났을 거예요. 브랜든이 대만행 박스에 뭘 담았는지 따라가 봤어요.

검색량 0짜리 이름

브랜든은 원래 알록달록한 색깔을 앞세운 여행용 파우치 브랜드였어요. 자사몰 하나에 기대던 작은 가게였죠.
2022년, 부스터스가 이 브랜드를 인수했어요. 판매와 재고 관리에 애먹는 중소 브랜드를 사서 키우겠다며 2019년에 생긴 회사예요.

인수 당시 월매출은 3,000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부스터스 최윤호 대표는 휴대용 마사지기 '클럭'을 키운 데일리앤코 창업자인데요. 그런 사람 눈에도 숫자는 영 아니었다고 해요.

"데이터로만 판단하면 이 브랜드를 인수하면 안 됐죠."

더 막막한 건 검색창이었어요. 회사가 이 파우치에 붙이려던 '압축 파우치'라는 말을 검색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검색량 0. 찾는 사람이 없으니 검색 광고로 데려올 손님도 없었죠.

회사 사정도 넉넉하지 않았어요. 처음엔 브랜드 20개쯤을 사들여 키울 계획이었는데, 결국 2개로 줄였어요. 2023년엔 '여러 브랜드를 사서 키우는 회사'라는 간판을 내리고, 될 만한 상품 몇 개에만 힘을 몰았습니다.

맨 뒤에 숨어 있던 지퍼

부스터스가 한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어요. 색깔 얘기를 뒤로 빼고, 상품 설명 뒤쪽에 밀려 있던 압축 기능을 맨 앞으로 꺼냈어요. 지퍼 하나를 더 잠그면 옷 부피가 확 줄어드는 그 기능이요.

그리고 이름을 지어 붙였죠.

"저희가 '압축 파우치'라는 단어를 만들었어요."

아무도 안 찾던 단어였지만, 터질 것 같은 캐리어 위에 올라앉아 본 사람은 많았던 거예요. 2023년 1월 '부피순삭 압축 파우치'로 다시 나온 뒤 3년 남짓 동안 1,012만 개가 팔렸어요. 누적 매출은 1,000억 원을 넘겼고, 부스터스 매출은 2022년 110억 원에서 지난해 1,527억 원이 됐습니다.

손님 앞에 내미는 기능의 순서만 바꿨죠. 이 습관이 대만에서 한 번 더 나와요.

대만 야시장 손님이 고른 가방

브랜든엔 파우치 말고 가방도 있었어요. 2024년 7월에 낸 '세이프' 라인이에요. 칼날에 잘 베이지 않는 방검 원단을 겉감과 안감 사이에 넣고, 여권·카드 정보를 무선으로 긁어 가는 걸 막는 RFID 차단 주머니를 달았습니다. 처음엔 해외여행 가는 한국 사람을 위한 가방이었죠.

브랜든은 지난해 2분기 대만 쿠팡 로켓배송에 들어갔고, 9월부터 대만을 중심으로 해외 판매에 본격적으로 나섰어요. 그리고 대만 손님 장바구니를 열어 보니 주인공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올해 1분기 글로벌 매출 상위 10개 품목 중 가방이 51.1%였어요. 세이프 플러스 라인(월렛백·백팩·크로스백) 하나가 전체 매출의 43.2%를 냈고요. 그 분기 글로벌 매출은 직전 분기보다 222% 늘었습니다.

이유는 대만 손님들의 걱정에 있었어요. 대만은 해외여행을 즐기고 가방을 잘 사는 시장이에요. 치안은 좋은 편인데도, 브랜든의 대만 성적을 다룬 지디넷코리아 보도는 야시장·번화가의 소매치기 걱정을 이유로 짚었죠.

걱정은 출국 게이트까지 따라갑니다. 한 대만 블로거는 출국 전에 이 백팩과 여권 지갑을 챙기며 이렇게 적었어요. "소매치기는 정말 아무 느낌도 없이 지퍼를 열 수 있다." 그 블로거도 소매치기를 겪어 본 적이 있다고 덧붙였죠.

동네 야시장에서 한 번, 여행지에서 또 한 번. 소매치기 걱정이 이 브랜드의 제일 부지런한 영업사원이 된 셈이에요.

브랜든도 그 신호에 맞춰 판을 바꿨습니다. 대만 공식몰에선 '안심(安心)' 시리즈 가방이 대표 상품 자리에 올랐어요. 데일리 백팩이 2,799대만달러, 우리 돈 11만 원쯤이에요. 파우치 한 개(895대만달러)의 세 배가 넘습니다. 객단가가 세 배 차이 나는 상품이 맨 앞에 선 거예요.

백화점 앞 대기줄

로켓배송은 주문이 들어온 다음부터 일해요. 주문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건 또 다른 일이죠. 브랜든 관계자는 두 가지를 같이 말했어요.

"국내에서 제품을 납품하면 대만 현지 판매까지 연결되는 쿠팡의 물류망 덕분에 해외 진출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대만 현지 자사몰 마케팅과 쿠팡 판매를 병행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올봄엔 타이베이 신광미츠코시 백화점에 팝업을 열었는데, 문을 연 초반부터 대기줄이 생겼어요. 대만 블로거들의 공동구매(團購) 글도 줄줄이 이어졌죠. 알리는 일은 대만 자사몰과 현장이, 다음 날 문 앞까지 보내는 일은 쿠팡이 나눠 맡은 그림입니다.

물론 70배는 입점 첫해의 작은 출발점에서 잰 배수예요. 그래도 방향은 분명해 보이더라고요. 브랜든은 이 공식을 들고 일본 공식몰을 열고 라쿠텐에도 들어갔어요. 회사 표현으로는 "대만에서 검증된 가방 카테고리의 성장 공식"을 일본에서도 잇겠다는 거죠.

우리 상세페이지의 셋째 줄

브랜든은 같은 일을 두 번 했어요. 한국에선 색깔 뒤에 숨은 압축 기능을, 대만에선 파우치 뒤에 있던 소매치기 방지 가방을 맨 앞으로 꺼냈죠. 두 번 다 그 나라 손님이 걱정하는 쪽으로 순서만 바꿨어요.

로켓배송은 박스를 하루 만에 옮겨 줍니다. 그런데 그 박스에 뭘 담을지는 정해 주지 않습니다. 1만 곳이 같은 트럭을 타는데 결과가 갈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 스마트스토어에도 비슷한 게 하나쯤 있을 겁니다. 리뷰에선 손님들이 자꾸 칭찬하는데, 상세페이지에선 셋째 줄쯤에 조용히 적혀 있는 기능이요. 해외 판로를 알아볼 때도 국내 1등 상품부터 싣기 전에, 그 나라 사람들이 매일 겪는 걱정과 그 셋째 줄을 나란히 놓아 보세요!

— 캐리어 지퍼를 괜히 한 번 더 잠가 본 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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